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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자(徐榮子) 여사(女史)는 1968년 26세 때에 전태수씨와 결혼하여 시부모님을 모시고 슬하에 남매를 두고 가난하지만 화목(和睦)하게 살고 있는 효부(孝婦)이다.
서여사(徐女史)의 남편은 일정한 직업 없이 영천, 대구 등지를 전전하다가 20년 전에 경주에 정착(定着)해서 막노동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10년 전부터 남편이 간경화증으로 입원치료(入院治療)했다가 퇴원했다가를 수 차례 되풀이 하고 보니 가정형편이 점점 어려워져 마을의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되었을 만큼 빈곤(貧困)해 졌다.
이에 서여사(徐女史)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라도 닥치는 대로 날품을 팔고 막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때로는 과실이나 채소, 생선 등의 행상(行商)을 하기도 하면서 시부모(媤父母)님을 봉양(奉養)하고 남편의 약값과 자녀들의 교육비를 충당해 나갔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서여사(徐女史) 자신이 젊었을 때 과로로 얻은 만성질환을 앓다가 뇌수술까지 받게 되었는데 그 후유증(後遺症)으로 보행에 지장이 있으나 하루 8천원의 일당을 받고 병원의 일용고용원으로 종사하면서 가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서여사(徐女史)는 자신의 몸도 괴롭지만 조석으로 시모(媤母)님께 문안 드리고 시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불편한 점이 없는가를 살피고 병원에 출근해서도 전화를 걸어 점심을 꼭 찾아 잡수시도록 연락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시어머니께서 노환(老患)에다가 신경마비증세가 잦아 거동이 불편해졌다.
서여사(徐女史)는 민간요법(民間療法)으로 좋다는 약을 구해서 병구완을 하는 한편, 시모(媤母)님의 손발이 되어 세수와 머리감기기, 목욕 등을 시켜 드리고 속옷과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이부자리의 세탁 등 한마디 불평 없이 모든 시중을 정성껏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부(媤父)님께서 약주(藥酒)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매일 한 병씩 꼭 챙겨 드리고 있다.
전통윤리가 무너지고 경로 효친사상이 날로 쇠퇴해가는 오늘날 서여사(徐女史)는 지병의 후유증으로 자기 자신의 몸도 가누기 어려운데 병약한 남편의 뒷바라지와 연로하신 시부모님을 봉양(奉養)하고 시모님의 손발이 되어 주어야 하면서 한 가정의 실제적인 가장(家長) 일을 다 해야 하니 그 얼마나 고생이 많겠는가.
서여사(徐女史) 가정에 행운(幸運)이 깃들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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