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조순복(趙順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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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1993년 4월 23일)
독행상(篤行賞)
대구직할시 서구 비산4동
선행(善行) 조순복(趙順福) 55세

조순복(趙順福) 여사(女史)는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출생하여 광복(光復)후에 월남하여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27세 때에 당시 국군 중사이던 김석만씨와 결혼하였다.

조여사(趙女史)는 결혼 전에는 시댁과 종교가 달랐으나 여필종부(女必從夫)하여 시댁(媤宅)의 종교인 불교에 귀의(歸依)하였으며 군인의 봉급이 박봉(薄俸)이지만 매월 문안편지와 함께 용돈을 시부모님께 우송하는 등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이웃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1973년 남편 김석만씨는 26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轉役)하였다.

군에 있을 때에 운전을 주특기(主特技)로 하던 남편은 제대 후 화물차량으로 개인사업을 했으나 경험부족으로 사업에 실패하고 많은 고통을 받았다.

1974년 대구로 이주하여 개인사업을 하여 돈을 모우게 된 조여사(趙女史)는 고아원, 양로원(養老院), 경로당(敬老堂)을 찾아가서 불우한 노인들과 이웃들을 돕기 시작했다.

월세방을 얻어 놓고 노인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는 등 노인들을 위로하고 마을을 즐겁게 해 드렸다.

또 고향인 경북 고령군 쌍림면 신곡리에 있는 선조(先祖)의 묘소(墓所)에 입석하였고 제실을 건립할 때에 거의 매일 같이 참여하여 현장의 인부들을 위로하고 음식을 대접하는 등 숭조사상(崇祖思想)도 남달리 투철하였다.

뿐만 아니라 불우한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성격이 아니라서 불우이웃 돕기에도 성금모금에 적극 협조하고 명절 때에는 소외(疏外)된 분들과 이웃 어른들을 위해서 음식을 일부러 많이 장만하여 대접하는 등 따뜻한 인정을 베풀고 있다.

돈이 있다고 남을 돕고 자선사업(慈善事業)을 하는 건 아니다.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고, 못 가진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팽배(彭排)하고 남들은 어떻게 되든지 저만 잘 살겠다고 하는 세상에서 조여사(趙女史)는 신혼 초부터 시부모님께 문안편지와 용돈을 부치는 정성으로 효도하고 조상을 숭배하고 고아원, 양로원, 경로당 등 불우한 이웃을 돕고 경로의 정신을 실천했으며 헌신적으로 사회봉사활동(社會奉仕活動)에 참여하고 있으니 오늘날같이 인정이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에서 인정 많은 선행자(善行者)라고 주위 사람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칭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