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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수(安孝秀) 여사(女史)는 1975년 23세 때에 강원도 영월에서 이곳 영풍군 부석면으로 시집와서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도 근면 성실하게 일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안여사(安女史)는 중매하는 사람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전처의 소생이 있는 줄도 모르고 시집왔으나 모두가 자기 운명이라고 받아 들이고 시어머니께 효도(孝道)하면서 전처의 딸 4명을 자기의 친딸처럼 돌보면서 가난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으니 참으로 장한 주부라 하겠다.
요즘 새댁들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혼조건으로 내세우고 자칫하면 돌아서 버리고 전처의 딸이 한 사람이라도 구박하고 미워하기 쉬운데 4명이 되는데도 안여사(安女史)는 차별 없이 양육했다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1979년에 영풍군수로부터 효부상(孝婦賞)을 수상(受賞)받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안여사(安女史)의 슬하에도 1남 3녀가 출생하여 모두 8명의 자녀를 갖게 되었는데 전처의 딸들을 자기의 친 자녀와 조금도 다름없이 교육시키고 훌륭하게 길러 모두 사회에 진출시켰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친어머니 이상으로 감사면서 가끔 생활비도 보태어 주고 있으니 얼마나 흐뭇한 이야기인가.
지금부터 7년 전 그러니까 1986년에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안여사(安女史)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눈앞이 캄캄하여 한동안 실의에 빠졌으나 시어머니 봉양(奉養)과 어린 자식들의 양육(養育)을 생각하여 더욱 분발해야겠다고 각오하고 아무리 어렵고 힘드는 일이라도 하고 담배 농사를 지으면서 돌산을 개간하여 사과나무를 심는 등 억척같이 일하고 있다.
그리고 8남매 모두가 우애가 있어 서로 도우고 할머니와 어머니에게도 효도하는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칭찬해 마지 않는다.
안여사(安女史)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가난하게 살고 그 동안 너무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아 걷기가 불편하고 약을 복용해야만 하지마는 항상 시어머니가 어디 불편한 데가 없는가 걱정하고 아직도 재학 중인 4명의 자녀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속아서 후처가 된 안여사(安女史)는 남편과 사별(死別)하고도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전처의 딸들을 훌륭하게 교육시켰으니 참으로 보기 드문 효부(孝婦)이자 열부(烈婦)이다.
이처럼 인내하며 살아 온 안여사(安女史)의 아름다운 마음씨와 인간애(人間愛)에 고개 숙여 박수를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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