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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李英子) 여사(女史)는 1961년 20세 때에 최현한(崔鉉韓)씨와 결혼하여 시어머니를 모시고 부산에서 살았는데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도산(倒産)하자 퇴직금(退職金)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여사(李女史)는 당시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던 친정 어머니의 도움으로 얼마 동안은 지낼 수가 있었으나 살 길을 찾아서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서울에 가서 1년 동안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남편은 서울에 남고 이여사(李女史)는 딸을 데리고 친정식구들이 살고 있는 경산군 하양으로 이사하고 친정(親庭)의 도움으로 미용기술(美容技術)을 배워 미용실을 운영하게 되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서울에 남아 있던 남편이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도저히 일을 할 수 가 없게 되자 직장을 그만두고 하양으로 와서 치료를 받았으나 점점 악화되어만 갔다.
운동을 하면 치료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매일 아침 조깅을 하던 중 1988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영남대학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 의식은 회복했으나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고 말았다.
4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통원치료하고 물리치료를 하는 등 온갖 방법으로 병간호(病看護)를 했으나 15년 전부터 앓아오던 류마티스 관절염과의 합병증(合倂症)으로 고통은 더욱 심했다.
이여사(李女史)는 매일 남편의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 입혔고 이부자리의 세탁 등 지극한 정성으로 병구완을 하고 있다.
이여사(李女史)는 이러한 와중에서도 딸 넷을 모두 훌륭하게 교육시키고 있다.
큰 딸과 둘째 딸은 대학(大學)에 다니고 셋째는 고등학교, 넷째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여사(李女史)는 오직 남편의 병(病)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새벽 5시가 되면 어김없이 남편을 부축하여 운동을 시키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남편에게 신앙(信仰)의 힘으로 마음의 평온을 찾도록 하기 위해 매주 가까운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고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物理治療)를 받고 있다.
이와 같이 이여사(李女史)는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남편의 병 치료를 위해서 수 년을 지냈고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된 남편의 병구완을 5년 동안이나 하면서도 짜증내거나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하고 있으니 장(壯)하다 아니할 수 없으며 모든 여성(女性)의 귀감이 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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