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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선(金命先) 여사(女史)는 1956년 25세 때에 군에 복무하고 있던 조유석씨와 결혼하여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1958년에 남편이 군에서 제대했으나 군에 복무할 때에 앓던 동상(凍傷)이 악화되어 양쪽 손발에 고름이 계속 나오고 악취가 심했으나 온갖 정성을 들여 병 치료를 하고 안동, 대구 등지를 오가면서 좋다는 약을 다 써보았으나 7년 후인 1965년에 남편은 더 이상 방치(放置)하면 생명(生命)이 위험하다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두 다리와 양손의 손가락 전부를 절단(切斷)하게 되었다.
남편은 자신이 불구자가 되었다는 절망(絶望)적인 생각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답답함 때문에 신경질적인 행동을 김여사(金女史)에게 하게 되었으며 어떤 때에는 실의에 빠져서 술을 마시고 취해서 눈물로 하소연하는 등 극도로 쇠약해진 심리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들을 보고 시아버지(媤父)인 조익기씨는 충격(衝擊)을 받아 화병(火病)으로 67년에 사망하시고 가계는 더욱 어렵게 되었으나 김여사(金女史)는 절망하지 않고 어린 자녀들에게 불구자라도 너희들의 아버지니까 효도(孝道)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남편이 불안한 심리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정성을 다 바치고 있다.
김여사(金女史)는 남편의 시중을 드는 한편, 시어머니께도 지극한 정성으로 효도하고 여자의 힘으로 농사일을 하고 남의 집 품팔이도 해 가면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해서 장애자용(障碍者用) 오토바이를 한 대 사서 바깥 출입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조금씩 정신적인 안정을 찾게 했다.
집이 비탈진 언덕에 있기 때문에 남편의 통행에 도움이 되도록 손수 길을 파서 경사를 완만하게 하고 88년에 길을 시멘트로 포장하기 전까지는 김여사(金女史)가 업고 길을 오르내리고 했으며 방안에서도 대소변을 받아 내는 등 30년 동안 남편의 손발이 되어 시중을 들고 있다.
1985년 시어머니가 노환(老患)으로 거동이 불편하자 김여사(金女史)는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들면서도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극진히 시봉해서 지금은 많이 회복(回復)되었다.
이와 같이 김여사(金女史)는 평생 동안 남편과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들면서 가계(家計)를 꾸려가고 있으니 그녀의 열행(烈行)은 모든 여성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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