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김분이(金分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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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1993년 4월 23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청도군 화양읍
효부(孝婦) 김분이(金分伊) 64세

김분이(金分伊) 여사(女史)는 1948년 19세 때에 구경서씨와 결혼하여 시어머니를 모시고 슬하에 1녀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 나가던 중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남편 구경서씨는 군에 입대 하였는데 당시 딸은 한 살이었고 지금은 결혼해서 부산에서 살고 있는 유복자 구기회씨는 임신 5개월째였다.

김여사(金女史)는 남편 대신에 가장 노릇을 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그런데 1953년 7월 강원도 고성지구의 전투(戰鬪)에서 남편이 전사(戰死)했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과 절망(絶望) 속에서 나날을 보냈었으나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의 눈물과 한숨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두 남매(男妹)를 볼 때 언제까지나 이렇게 좌절(挫折)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용기(勇氣)를 내어서 가정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여사(金女史)는 자작농 800여평을 경작하면서 남의 집 농사일의 품팔이와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해서 남매를 고등학교까지 공부시키고 생활형편이 조금 나아졌을 때 연로(年老)하신 시어머니(媤母)가 중풍으로 쓰러졌다.

김여사(金女史)는 이웃 사람들에게 수소문(搜所聞)해서 중풍에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반신불수가 되어 문밖 출입(出入)을 못하시는 시어머니의 식사 시중과 대소변을 받아내고, 하루에 몇 번씩 적셔내는 속옷을 갈아 입히고, 빨래를 하면서도 한번도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바쁜 농사철에도 시어머니의 병구완(病救援)을 정성껏 하고 일하다가도 시간을 내어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하면서 10여년 동안 한결같은 변함없는 마음으로 시중을 들고 있다.

바쁜 농사철이 지나면 시어머니 곁에 앉아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도 해 드리고 가끔 이웃 노인들을 초청(招請)하여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고 시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즐겁게 노시도록 하고 있다.

김여사(金女史)의 이러한 효행(孝行)을 항상 곁에서 지켜본 두 남매도 할머니께 극진히 효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김여사(金女史)는 6.25 전쟁 때 남편을 잃고 여자의 힘으로 연로(年老)하신 시어머니(95세)를 모시면서 10여년이 넘도록 병구완을 하고 있으니 그의 앞날에 서운(瑞雲)이 반드시 올 것을 비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