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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남(尹壽男) 여사(女史)는 1963년 21세 때에 이영우씨와 결혼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생계(生計)는 걱정 없이 슬하에 3남 1녀를 두고 화목(和睦)하게 살았다.
그러던 중, 1986년 10월 어느 날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시던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지시더니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 윤여사(尹女史)는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여 시어머니를 붙들고 울기만 했는데 새벽녘에 말문이 열렸으나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중풍에 좋다는 약을 동분서주 구해다가 달여 드렸으나 워낙 노약하시어 회복되지 않고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거동이 불능하게 되었다.
윤여사(尹女史)는 시어머니의 식사 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더럽혀진 옷을 갈아 입히고, 이부자리의 세탁 등 온갖 정성(精誠)을 다하여 7년 동안 한결같이 병구완(病救援)을 하고 있다.
불행은 언제 어떻게 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윤여사(尹女史) 앞에 또 하나의 커다란 불행이 다가왔다.
1989년 태산같이 믿었던 남편 이영우(55세)씨가 간암이라는 진단(診斷)을 받았다.
윤여사(尹女史)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눈앞이 캄캄하였다.
불철주야 온갖 정성을 다했으나 8개월간의 투병생활(鬪病生活)을 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편과 사별(死別)한 윤여사(尹女史)는 한동안 실의에 빠졌으나 병석에 누워 계시는 시어머니의 병간호와 어린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가야 한다고 결심하였다.
우선 시어머니의 병간호를 해 가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합동벽돌 공장에 가서 딱한 사정을 말씀 드렸더니 공장에 취업(就業)하게 되어 생계(生計)를 꾸려갈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 일자리가 가까운 곳에 있고 사장님도 도움을 주어 수시로 집에 가서 새참을 드리고 대소변을 받아 내게 되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옳은가 보다.
지금은 자녀들이 건강(健康)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윤여사(尹女史)는 오늘도 고된 몸을 이끌고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시어머니의 병구완에도 모든 정성을 기울이고 있으니 그의 행적(行績)은 모든 이의 사표(師表)가 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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