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최윤자(崔潤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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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1993년 4월 23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영천시 완산동
효부(孝婦) 최윤자(崔潤子) 40세

최윤자(崔潤子) 여사(女史)는 1977년 24세 때 박재문씨와 결혼하여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누이와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비록 가난하지만 화목(和睦)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결혼한지 9개월만에 그러니까 그 해 10월에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心臟痲痺)로 사망하였다.

최여사(崔女史)는 하늘이 무너진 듯 눈앞이 캄캄했으나 뱃속에 아이가 있기 때문에 따라 죽을 수도 없었다.

남편이 사망하고 1개월 후에 유복자(遺腹子) 박정읍을 출생하였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너무 가난하여 당장에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최여사(崔女史)는 아이를 당분간 시부모님께 맡겨 두고 영천시내에 거주하면서 처음에는 요구르트 배달을 하였으나 돈벌이가 되지 않아 방직회사에 취직하여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최여사(崔女史)는 그 동안에 모은 돈으로 시누이 2명을 출가시키고 작년에는 막내 시동생을 장가보내어 분가(分家)시켰다.

주위의 사람들이 개가(改嫁)하라고 권유해도 단호히 거절하고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유복자를 훌륭하게 기르면서 살다가 죽어서 저승가면 다시 남편을 만나서 잘 살아 보겠다면서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없이 수절(守節)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고유의 미풍양속과 전통윤리(傳統倫理)가 무너지고 경로효친(敬老孝親)의 정신이 날로 쇠퇴해가고 심지어는 여성 상위 시대가 되어 남편이 건재하고 자녀들을 두고 사는 가정에서도 뜻이 맞지 않으면 이혼(離婚)하고 가정을 파괴해 버리는 예를 허다하게 볼 수 있는 세상이고 형제끼리 부모님을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하는 판인데 최여사(崔女史)는 시집와서 남편과 1년도 함께 살지 못하고 사별(死別)했으며 주위의 사람들이 재혼(再婚)하라고 권유해도 단호히 거절하고 수절하면서 찢어지도록 가난한 살림살이를 일으켜 시부모님을 극진히 봉양하고 시누이와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하여 성혼(成婚)시키고 유복자(遺腹子)를 훌륭하게 교육시키고 있으니 요즘 젊은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열부(烈婦)이고 효부(孝婦)라고 마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스물네살의 청상(靑孀)이 유복자를 기르면서 연로하신 시부모님을 봉양하면서 직장에 나가 일하고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가고 있으니 최여사(崔女史)야말로 근세(近世) 젊은 여성들의 귀감(龜鑑)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