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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자(李貞子) 여사(女史)는 경남 합천 서산리의 명문 합천 이(李)씨의 후예로 자랄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엄하고 바른 예절교육(禮節敎育)을 받고 성장하여 김진동씨와 결혼하였다.
시가(媤家)는 살림은 넉넉하지 못했으나 예의범절은 지키고 학문을 숭상(崇尙)하는 가문(家門)이였으며 남편 김진동씨는 고령군내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학교 일에만 전념하고 집안 일은 거의 모르고 지내니 6대 종가(宗家)의 맏며느리로서 홀로 계시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4대 봉제사(奉祭祀)며 찾아오는 집안 어른들 모시는 등 어진 종부(宗婦)로서의 소임을 다하는데에 많은 힘과 정성을 필요로 했다.
그러던 중, 1985년 2월에 시어머니 곽임글(87세) 여사가 갑자기 중풍(中風)으로 쓰러져 말문을 닫고 거동이 불능하게 되었다.
이에 이여사(李女史)는 사방으로 수소문해서 중풍에 좋다는 약을 구해 드리고 평소에 즐기시던 음식을 정성껏 장만하여 대접하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히는 등 시어머니의 손발이 되어 극진히 병구완(病救援)을 하면서도 한마디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지극 정성을 다했다.
이렇게 4년 동안 성심으로 병구완을 했더니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시어머니의 말문이 조금씩 열리고 며느리를 보면 고마움에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고 이여사(李女史)는 더욱 안타까운 심정으로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세상 돌아가는 온갖 이야기를 들려 드리면서 말벗이 되어 드리고, 이웃의 할머니들을 수시로 집으로 모시고 와서 음식을 대접하고 함께 이야기 하고 놀도록 배려(配慮)해서 시어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있다.
이것을 지켜 본 마을의 노인들이 추천(推薦)하여 몇 해 전에는 고령군수로부터 효행상(孝行賞)을 받기도 했다.
이여사(李女史)는 또 이웃 노인들에게도 친절하고 공손(恭遜)하며 관내의 경로당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해마다 경로잔치가 있을 때에는 부녀회원들과 함께 하루 종일 노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심부름을 하는 등 몸을 사리지 않고 솔선수범(率先垂範)해서 일을 한다.
이렇게 이여사(李女史)는 6대 종가의 종부(宗婦)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한편, 연로(年老)하신 시어머니의 병구완을 지극한 정성으로 하고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고 이웃과 다정하게 지내는 모범(模範) 주부이며 효부(孝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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