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박승일(朴勝日) 여사(女史)는 의성읍 상리리에서 살면서 같은 마을의 산기슭 오두막집에서 사고무친(四顧無親)으로 의지할 곳 없는 이용암 할아버지를 돌보아 준 선행자(善行者)이다.
이용암 할아버지는 의지할 곳이 없어 혼자 사는 거택자로서 생활이 궁핍(窮乏)하고 외롭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를 가엾게 여긴 박여사(朴女史)는 친아버지처럼 세심하게 돌보아 주었다.
그런데 93년 5월부터 거동이 어려울 만큼 기력이 쇠약해 졌다.
박여사(朴女史)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식사를 제공하고 방 청소를 하고 의복을 세탁하는 등 9월 초순까지 4개월 동안 남몰래 시중을 들었다.
군청 담당직원이 찾아 올 때마다 방안과 부엌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의복도 깨끗하기에 이웃사람들에게 물어 보아도 누가 돕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러던 중, 93년 9월에 이(李)노인의 병세가 악화되어 의성 공생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입원수속 절차를 밟을 때 간호할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고 했을 때에 비로소 박승일(朴勝日) 여사(女史)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李)노인이 입원하자 박여사(朴女史)는 식사의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세수를 시켜 드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세탁을 하는 등 자기의 친부모라도 하기 힘드는 병수발을 2개월 동안 한결같이 했고 이(李)노인이 입원하고 있는 동안 자주 병원을 방문한 박여사(朴女史)의 남편 권오준씨가 “우리 집 건너 방에 모시고가서 돌아가실 때까지 편안히 모시도록 하자”는 제의에 따라 박여사(朴女史)집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李)노인을 집으로 모시고 간 박여사(朴女史) 부부는 임종(臨終)할 때까지 따뜻한 방에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고 정성껏 모시다가 임종 때에는 부부가 지키고 앉았다가 초종장례를 정성껏 치루었다.
이러한 것을 지켜 본 박여사(朴女史)의 자녀들은 크게 감화(感化)하여 우리도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恭敬)하고 경로효친(敬老孝親)의 정신을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고 마을 사람들도 크게 감동(感動)하여 박여사(朴女史) 부부의 선행(善行)을 이구동성으로 칭송했다.
세상에는 착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지마는 그 중에는 생색을 내거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또는 이득을 보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박여사(朴女史)처럼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진심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다.
- 이전글제37회 독행상(篤行賞) 이명조(李明祚) 25.06.20
- 다음글제37회 독행상(篤行賞) 장점심(張占心) 2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