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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손양(權孫良) 여사(女史)는 고령군 개진면의 권효인(權孝仁)씨의 외동딸로 태어나 자라면서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아 현모양처(賢母良妻)의 부덕을 닦아 성산면의 서무조(徐武祚)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일가친척과 우의(友誼)를 돈독히 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권여사(權女史)의 남편 서무조(徐武祚)씨는 성산면 농협단위조합 직원으로 취직해서 성실히 근무하여 영농부장으로 승진했다.
이렇게 화목(和睦)하고 단란한 가정에 불행(不幸)이 닥쳐올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1981년 10월에 공무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뇌와 척추에 중상(重傷)을 입고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척추신경이 마비되어 현대의술로도 회복불능(回復不能)이라는 진단(診斷)을 받게 되어 퇴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퇴원하기는 했으나 숨을 쉬고 눈만 떴다가 감았다가 할 뿐이지 거동이 전혀 불능한 식물인간(植物人間)이 되고 말았다.
음식은 호스를 입에 넣어서 공급하고 대소변을 받아 내는 것은 물론이고 옷을 입힐 수가 없기 때문에 나신(裸身) 그대로 누워있고 일년 사시사철에 따라 요 이불을 바꾸어 가면서 방에 눕혀둔 채 방울방울 나오는 소변을 호스로 방밖으로 연결해서 변기에 받아 내어 제거하고 수시로 목욕을 시켜 드려야 하는 생활을 지금까지 13년 동안 계속하고 있다.
장병(長病)에 효자(孝子)가 없다고 하는데 권여사(權女史)는 식물인간인 남편의 병구완(病救援)을 한결같이 하면서도 원망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성심성의(誠心盛議) 지극한 정성을 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의 약값과 자녀들의 학비 등으로 전답 천여평은 남의 손으로 넘어갔으나 2남 2녀의 자녀들을 고등학교까지 공부시켜 모두 사회에 진출 시켰으나 참으로 장(壯)한 아내이고 어진 어머니가 아닌가.
이와 같은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주민들의 상신(上申)으로 성균관유도회 고령지부에서 현장을 답사(踏査)하고 1991년 9월에 열녀패를 수여하기도 했다.
세상에는 온갖 병도 있고 허다한 효부와 열녀도 있겠지마는 권여사(權女史)처럼 식물인간이 된 남편의 병구완(病救援)을 1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이어오기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관이 바뀌어가는 현대사회에서 권여사(權女史)의 열행(烈行)은 모든 사람들이 본 받아야 할 값진 교훈(敎訓)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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