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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애(金美愛) 여인(女人)은 달성군 구지면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구미공단에 취직하여 매월 생활비를 잊지 않고 집으로 송금해주는 착한 소녀로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985년 21세 때에 전홍식씨와 결혼하여 노환(老患)으로 누워 계시는 시할머니와 간경화(肝硬化症)로 투병(鬪病)중인 시아버지를 사글세방 두 칸을 얻어 모시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병구완을 하였다.
김여인(金女人)은 결혼 초부터 시할머니 김수연(84세)씨의 대소변을 받아 내면서 10년 동안을 한결같이 계속하고 있다.
더군다나 시할머니는 치매증(노망)이 있어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대소변을 처리해야 하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혀야 한다.
그런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3년 전부터 시아버지 전종권(61세)씨가 간경화증으로 몸져 눕게 되자 김여인(金女人)은 남편의 막노동으로는 도저히 시아버지의 약값을 감당할 수가 없어 전자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직장에 나가면서 시할머니와 시아버지의 간병(看病)을 해야 하니 여간 고되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김여인(金女人)은 시아버지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참고 견디어야 했다.
김여인(金女人)은 간경화에 좋다는 약은 어떻게 해서라도 구해다 드리고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看病)했기 때문에 지금은 시아버지의 병이 많이 좋아졌다.
김여인(金女人)의 시누이는 구미공단의 직물회사에 다녔는데 옳지 못한 친구와 어울려 가출을 했다.
그래서 김여인(金女人)이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행방을 알아 내고 찾아가서 설득해 데리고 와서 양장기술(洋裝技術)을 배우게 하고 교회에 나가도록 인도했다.
또 김여인(金女人)은 종가의 맏며느리이기 때문에 흩어져 자주 만나지 못하는 일가 친척들을 1년에 몇 번씩 모아 일가친척의 중요성과 효도(孝道)하는 마음을 일깨우고 있으며 쉬는 날에는 상모동의 경로당을 찾아가서 청소를 하고 노인들을 도와 주고 위로하고 한다.
이와 같이 김여인(金女人)은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노환으로 누워 계시는 시할머니와 간경화로 투병(鬪病)하는 시아버지의 병간호(病看護)를 하면서 시누이와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일가 친척간의 화목을 도모하고 이웃 어른들을 공경(恭敬)하고 있으니 이웃주민들이 효부(孝婦)라고 칭송이 자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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