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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남(權京男) 여인(女人)은 1978년 19세 때에 정국원(鄭國源)씨와 결혼하여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 4명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화목하게 살아 왔다.
그런데 권여인(權女人)은 결혼한 그 다음해에 골수염을 앓게 되어 반년이 넘도록 입원해서 치료(治療)를 받았으나 완쾌(完快)하지 못한 채 치료비와 부담 때문에 퇴원하여 통근치료를 받으면서 시부모님을 봉양(奉養)하고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열심히 했다.
권여인(權女人)은 자기의 병을 치료해 준 시댁의 고마움을 언제나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자기의 자녀 4명을 포함해서 모두 12명의 대가족(大家族)의 생계를 위해서 집안 살림살이는 물론이고 부모님들이 하고 있는 농사일도 있는 힘을 다하여 도우는 한편, 황소 한 마리와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사육(飼育)하였다.
권여인(權女人)은 조석(朝夕)으로 시부모님께 문안인사를 올리고 무슨 볼일이 있어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그 결과를 보고하고 평소에 시부모님들이 즐기는 음식을 정성껏 장만하여 드리고 집안 청소와 빨래를 깨끗이 하여 항상 명랑하고 환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시부모님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고 있다.
권여인(權女人)은 또 맏며느리계(契)를 조직하여 군민체육대회나 학교운동회 등의 행사에 참여하여 음료수를 제공하는 등 봉사활동(奉仕活動)을 하고 마을에 길흉사가 있을 때에는 참석해서 헌신적(獻身的)으로 봉사하고 농촌 일손 돕기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솔선수범하고 있다.
권여인(權女人)은 또 이웃 노인들이 놀러 오시면 친절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시도록 배려하는 등 시부모님 분만 아니라 이웃 노인들에게도 지극한 정성(精誠)으로 경로효친(敬老孝親) ㅡ사상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시아버지께서 뜻밖에 암(癌)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권여인(權女人)은 병원에서도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시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모든 정성을 다 바쳐 간호(看護)했으나 끝내 1993년 11월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상례(喪禮)절차를 간소화하자는 친척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권여인(權女人)은 스스로 100일 탈상(脫喪)으로 시아버지의 명복(冥福)을 빌었다.
이러한 효행이 알려지자 93년 12월에 영양군수(英陽郡守)로부터 93년도 영양(英陽)을 빛낸 군민상(郡民賞) 효행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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