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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영(權志英) 여인(女人)은 1978년 20세 때에 김대홍씨와 결혼하여 시할머니와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과 시누이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1984년에 시할머니께 치매(癡呆, 노망)에 걸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대소변을 가리지 않고 요나 이불에 그대로 싸고 벽에 똥칠을 하는 형편에 이르렀다.
권여인(權女人)은 이러한 시할머니의 방 청소를 깨끗이 하고 목욕(沐浴)을 시켜 드리고, 옷을 갈아 입히고, 요이부자리를 깨끗이 세탁하는 등 지극한 정성(精誠)으로 시할머니의 병수발을 들고 있다.
그런데 1989년 시아버지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게 되자 충격(衝激)을 받은 시어머니가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중풍으로 쓰러지게 되었다.
권여인(權女人)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과 보건소(保健所)를 왕래하면서 치료를 받으면서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따뜻한 물수건으로 찜질을 해 드리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온갖 정성을 다하면서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가서 좋다는 약을 구해서 달여 드리고 온갖 정성을 다했으나 병은 조금도 차도(差度)가 없고 마침내 반신불수가 되어 거동이 불능하게 되었다.
권여인(權女人)은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식사 시중을 들면서 대소변의 처리와 목욕을 시켜 드리고, 방 청소를 하고, 새 옷을 갈아 입히고, 빨래를 하는 등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병수발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의 수발을 한꺼번에 들어야 하니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나날이었을까 짐작해 본다.
권여인(權女人)은 방안에만 누워 계시는 시어머니를 부축해서 걸음걸이 연습을 시키기도 하고 옆에 앉아서 세상 이야기도 들려 드리고 하면서 정성껏 병수발을 드는 한편, 이웃에 불우한 노인이 병들었을 때 남의 일 같지 않다면서 찾아가서 집안 청소를 해주는 등 이웃 노인도 친부모처럼 섬기고 있다.
산업사회(産業社會)가 되어 물질이 풍부하고 모든 것이 편리하게 되어 요즘 젊은이들은 편리한 것만 좋아하고 불편하고 힘드는 일은 기피하는데 권여인(權女人)은 대소변을 처리하고 청소와 목욕 그리고 세탁 등의 힘드는 일을 10년 동안이나 도맡아 하면서도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으니 드물게 보는 효부(孝婦)가 아닌가.
그의 앞날에 만복(萬福)이 깃들 날이 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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