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이무용(李武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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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1994년 4월 21일)
효행상(孝行賞)
대구직할시 동구 검사동
효부(孝婦) 이무용(李武龍) 45세

이무용(李武龍) 여사(女史)는 1970년 20세 때에 4형제의 맏이인 황영길(黃永吉)씨와 결혼하여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들과 함께 살아왔는데 74년에 시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충격을 받은 시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술버릇이 아주 좋지 못했다.

그러나 이여사(李女史)는 시아버지의 주벽(酒癖)을 묵묵히 받아 주었다.

이여사(李女史)의 남편은 택시운전 기사인데 운전기사의 수입으로는 시동생들의 교육비와 자녀들의 양육비 그리고 생계를 꾸려가기에는 너무나 힘이 들었지마는 이여사(李女史)는 검소하고 알뜰하게 살면서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하여 공무원과 교사 등 사회의 일꾼으로 진출시켰고 결혼시키고 분가(分家)해 주었다.

이여사(李女史)는 주벽이 심한 시아버지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더욱 극진히 봉양(奉養)했으므로 시아버지도 며느리의 효성(孝誠)에 감화(感化)되어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어 차츰 좋아져서 가정이 화목하게 되었다.

이여사(李女史)는 시아버지의 건강(健康)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는 한편, 이웃의 어른들에게도 친절하고 공손하며 경로당(敬老堂)을 방문하여 과실과 음료수를 대접하고 불우한 이웃 노인들을 찾아가서 어려운 일을 도와 드리고 위로하는 등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이여사(李女史)는 또 주민화합과 복지이웃을 이루기 위해서 아파트 자체적으로 한마음운동을 전개하여 환경미화원을 위로하고 경로당(敬老堂)을 찾아가서 청소를 해 드리고 이웃간의 정을 나누는데 솔선하고 있다.

이여사(李女史)는 근검절약(勤儉節約)하여 알뜰히 모은 돈으로 18평짜리 임대아파트에 살다가 89년에는 현재 살고 있는 18평 아파트를 분양 받아 많은 식구들이 한 집에서 살면서 가정의 화목(和睦)을 이루고 있다.

이여사(李女史)는 시아버지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드리고 건강식품(健康食品)을 구해 드리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여사(李女史)는 4형제의 장남에게 시집와서 주벽(酒癖)이 심한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시고 시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착실히 하여 훌륭한 사회인으로 진출시켰고 남편의 박봉(薄俸)을 알뜰하게 쪼개어 마을의 노인들과 불우한 이웃들을 도우면서 이웃간의 친목과 따뜻한 정(情)을 나누고 있으니 지역주민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