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이경대(李敬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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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1994년 4월 21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경주군 안강읍
효자(孝子) 이경대(李敬大) 73세

이경대(李敬大)씨는 경주 안강읍 사방리에서 45년간 거주하면서 여주이씨(李氏)의 묘산(墓山)을 관리하고 묘답(墓畓)을 경작하면서 가난하게 생활하고 있다.

이경대(李敬大)씨는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슬하에 3남 5녀를 두었는데 묘답(墓畓)의 경작(耕作)만으로는 도저히 생계(生計)를 꾸려갈 수가 없어서 남의 집 날품팔이를 하고 막노동을 하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부인 김순영(62세)씨도 살림살이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인근에 있는 사찰(寺刹) 범천사에 나가서 얼마의 일당을 받도 고용살이를 하고 있다.

이경대(李敬大)씨의 어머니 설난이(92세)씨는 21년 전부터 갑자기 눈이 멀어져 앞을 보지 못하고 귀가 어두워서 들을 수가 없게 되자 이(李)씨는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민간요법(民間療法)으로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렸으나 병은 더 짙어져서 치매증(노망)까지 곁들게 되었다.

이경대(李敬大)씨는 그날 이후 20년이 넘도록 혼자서 어머니의 병구완(病救援)을 성심성의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그럭저럭 아이들은 장성(長成)하여 딸들은 출가하고 아들은 객지(客地)에 나가고 부인은 식모살이를 하고 있기에 이경대(李敬大)씨가 직접 대소변을 처리하고 방청소를 하고 평소에 어머니가 즐기시던 음식을 장만하여 식사의 시중을 들고 지극한 정성으로 봉양(奉養)하고 있으나 치매증이 있는 노모(老母)는 아들의 이러한 정성을 모르고 때로는 엉뚱한 일을 하기도 하니 기막힐 노릇이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은 옛날의 전설(傳說)같은 것을 보는 것 같다면서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그의 효행(孝行)을 칭송해 마지 않는다.
이경대(李敬大)씨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20년이 넘도록 노모의 고달픈 병간호(病看護)에 시달려 오지마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짜증 한번 내지 않으면서 한결같이 시봉(侍奉)하고 있으니 참으로 드물게 보는 출중의 효자(孝子)이다.
효(孝)는 모든 덕행의 근본이라는 동양윤리가 무너지고 경로효친 사상이 쇠퇴해가는 오늘날에도 이경대(李敬大)씨는 조금도 변함 없이 옛날 그대로 효(孝)를 실천하며 살고 있다.
이와 같이 이경대(李敬大)씨는 한 평생 가난하게 살아도 남에게 몹쓸 짓을 하지 않고 묵묵히 착하게 살아왔으며 자신의 나이도 73세의 고령이면서도 노모(92세)의 병구완(病救援)을 정성껏 하고 있으니 지역주민 모두가 그의 효성(孝誠)을 칭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