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박금순(朴今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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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1994년 4월 21일)
보화상(補化賞) 본상(本賞)
경북 청도군 매전면
효부(孝婦) 박금순(朴今順) 46세

박금순 여사는 1949년 5월 25일, 청도군 매전면 내리에서 아버지 박용호씨와 어머니 김용분 여사의 6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박여사는 천성이 온순하고 명랑하며 어려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아 현모양처의 부덕을 닦고 효도하는 것을 몸에 익혀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동생들을 잘 돌봐주어서 효녀라는 칭찬을 받고 자라 1970년 3월, 21세 때에 같은 마을 이웃의 자연부락에 사는 권씨문중 권태돌씨의 장남 권광기씨와 결혼 하였다.

시댁에는 시할머니와 시부모님 그리고 시동생과 시누이 등 10명이 넘는 대가족이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박여사는 층층시하의 맏며느리로서 시할머니와 시부모님을 정성껏 모시는 한편, 시동생과 시누이의 뒷바라지를 하는데에 힘이 들었지마는 맏며느리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그러던 중, 1975년에 77세인 시할머니께서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졌다. 시아버지와 남편은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유명한 의원을 찾아가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박여사는 시할머니의 식사 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기는 물론, 목욕도 자주 시켜드리고, 더럽혀진 옷을 갈아 입히기도 하며 이부자리의 세탁 등 온갖 노력을 다하는 한편, 옆에서 지루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해 드리면서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시할머니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하여 병간호를 한 보람이 있어 시할머니의 병세가 차츰 호전되어서 차도가 있자 우울하던 가정에 다시 화기를 찾게 되어 박여사도 겨우 한숨 돌리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78년에 시어머니께서 또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어 거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박여사 부부는 동분서주하여 약을 구해다가 시탕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간병하였으나 인명은 재천이라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병구완을 한 보람도 없이 1987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박여사는 비통한 심정을 참을 수가 없어 병을 회복시키지 못한 것은 자기 자신이 효심이 부족한 탓이라고 자책하면서 애곡하는 것을 지켜 본 이웃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효부라고 칭송해 마지 않았다. 

박여사는 살아계시는 시할머니와 시아버지께 더욱 효도하겠다고 다짐하고 모든 정성을 다하고 있으나 시할머니의 연세가 워낙 고령(96세)이라서 병세가 호전되기는 해도 거동이 불편하여 문밖 출입을 못 하신지가 여러 해가 되는데 박여사는 한결같이 지극한 정성으로 모든 시중을 들고 있다.

서구의 물질문명이 밀려오면서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정신문화인 전통윤리도덕과 미풍양속은 점점 허물어져 가고 경로효친 사상이 날로 쇠퇴해 가는 오늘날, 박여사는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병구완을 20년 가까이 불평 한마디 없이 지극한 정성으로 감당하고 있으니 참으로 출중한 효부가 아닌가.

뿐만 아니라, 산업사회가 되면서 농촌을 떠나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고 따라서 대가족제도는 꺼리고 핵가족 시대인데도 박여사는 층층시하의 맏며느리로서 시동생과 시누이의 뒷바라지를 착실히 하여 성혼시킨 후 분가시켰으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의 교육도 훌륭하게 하고 있으니 이웃 사람들이 모두 장한 주부라고 칭송하면서 감동하고 있다.

박여사의 남편 권광기씨는 마을 사람들의 추대로 이장직을 맡고 있는데 공무로 집안 일을 돌보지 못할 때에는 농사일을 맡아서 하면서 시할머니의 병간호를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한마디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내조에 힘쓰고 있다.

박여사는 또 동네의 노인들에게도 친절하고 공손하며 시할머니와 시아버지의 생신 때에는 말할 것도 없이 평소에도 자주 이웃 노인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음식을 장만해 대접하고 시할머니와 시아버지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고 있으며 해마다 5월에 있는 경로잔치에 앞장 서서 음식을 준비하며 많은 노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온갖 준비를 다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모두 편리한 것만 좋아하고 허영과 사치에 들떠 있지만 박여사는 근검 절약하면서 대가족의 맏며느리답게 모든 일을 척척 처리해내고 집안은 언제나 깨끗하고 환하게 청소하고 정리 정돈해 놓으며 시아버지의 의복을 항상 깨끗하게 갈아 입혀 드리고 용돈도 챙겨 드려서 밖에 나가서 노인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있다. 

그리고 마을이 길흉사가 있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참여하여 자기 일을 하듯이 솔선수범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박여사는 4대가 한 집에서 살면서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병간호를 근 20년 동안이나 해 오면서 남편의 농사 일을 돕고 대가족의 맏며느리로서 동기간에 우애있게 지내고 자녀들을 훌륭하게 교육시켰으며 이웃 어른들을 공경하고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출중한 효부이자 현모양처로서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