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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란(金先蘭) 여사(女史)는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서 1981년에 시어머니께서 중풍 증세가 나타나더니 마침내 치매(노망)가 겹쳐 거동이 불능(不能)하게 되자 남편은 농사일에 매달려 있고 김여사(金女史) 혼자서 병간호(病看護)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김여사(金女史)는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시어머니의 식사 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드리는 등 여간 어렵고 힘드는 일이 아니었지만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看病)하였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시동생과 수의해서 전국을 유람(遊覽)하시도록 시동생의 자가용으로 전국의 사적지(事蹟地)와 명승지(名勝地) 그리고 사찰(寺刹)을 관광(觀光)하게 하여 좋은 추억을 만들어 드렸다.
그런데 불행은 연속해서 1986년 11월에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뒤 1년 남짓할 때 시아버지께서 또 중풍으로 쓰러졌다.
김여사(金女史)는 5년 동안이나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에 모든 정성을 다했는데, 이번에는 또 시아버지의 병간호를 해야 하게 되었다.
시아버지는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거동이 불가능(不可能)하므로 방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한다.
그래서 김여사(金女史)는 시아버지의 식사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沐浴)을 시켜 드리고, 더렵혀진 옷을 갈아 입히고, 빨래를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간식을 드려야 하는 등 온갖 정성(精誠)을 다 바쳐 시중을 들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병은 쉽사리 치유(治癒)되지 않는다.
장병에 효자가 없다(長病無效者子 장병무효자)고 하는데 김여사(金女史)는 항상 밝은 표정으로 시아버지의 병간호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시동생이 형수(兄嫂)를 고맙게 여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동네 사람 모두가 감동(感動)되어 효부라고 칭찬(稱讚)해 마지 않는다.
고유의 전통적 윤리도덕(倫理道德)이 땅에 떨어지고 경로효친(敬老孝親)사상이 날로 쇠퇴(衰退)해가는 오늘날 김여사(金女史)는 15년에 가까운 장구(長久)한 세월을 시부모님의 병간호를 지극한 정성으로 하고 있으니 부모님 모시기를 꺼려하는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젊은 여성이라고 주위 분들이 찬사(讚辭)를 보내고 있다.
김여사(金女史)의 앞날에 행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祈願)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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