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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순(權龍順) 여인(女人)은 1982년 23세 때에 이창욱씨와 결혼하여 시할머니와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과 시누이와 함께 살면서 슬하에 2남을 두어 4대(代)가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화목(和睦)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런데 1987년에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서 진찰(診察)을 해 보았더니 간암(肝癌)이라는 판명이 내렸다.
암(癌)은 현대의학으로도 난치병(難治病)이라서 병원에서도 가망(可望)이 없다하기에 집으로 돌아와 민간요법(民間療法)으로 온갖 방법으로 치료해 보았으나 백약이 무효(無效)로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권여인(權女人)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눈앞이 캄캄하여 애통(哀痛)함을 금할 수가 없었으나 연로하신 시할머니와 시부모님, 그리고 어린 자식들을 위해서 꿋꿋하게 살면서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야겠다고 단단히 각오하고 역경(逆境)을 해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권여인(權女人)은 우선 손자를 잃은 시할머니와 자식을 잃은 시부모님이 식음을 전폐(全廢)하고 실의(失意)에 빠져 있는 것을 자기의 불찰이라고 사죄하고 위로(慰勞)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고 기운을 회복(回復)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 본 마을 사람들은 참으로 하늘에서 내려 보낸 효부라고 칭송(稱頌)이 자자했다.
권여인(權女人)은 남편이 살아계실 때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하여 90세의 시할머니를 봉양(奉養)하고 시부모님을 해마다 효도관광(孝道觀光)을 시켜 드리는 등 지극(至極)한 정성으로 시봉(侍奉)하고 있다.
권여인(權女人)은 실질적인 가장이 되어 과수(果樹)농사를 알뜰히 가꾸면서 남의 집 일손도 도와주고 마을 어른들은 부모님 섬기듯이 공경(恭敬)하고 마을의 상조회(相助會), 부녀회, 친목회(親睦會) 등 통해서 근검절약하는 정신을 홍보하고 새 질서 생활운동을 실천하여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상수원 보호에도 앞장 서서 많은 기여(寄與)를 했다.
그리고 마을의 길흉사(吉凶事)에도 솔선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 건설에 노력하고 있다.
마을의 길흉사(吉凶事)에도 솔선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 건설에 노력하고 있다.
권용순(權龍順) 여인(女人)은 꽃다운 나이 20대에 남편과 사별(死別)하고 어려운 가계를 꾸려가면서 연로하신 시할머니와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두 아들을 교육시키면서 이웃과 더불어 정답게 살고 있으니 그의 장래에 만복이 깃들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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