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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金成仲)씨는 1949년 영양군(英陽郡) 무학리(舞鶴里)에서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할머니와 부모님을 모시고 슬하에 1남 4녀를 둔 10수명의 대가족이 한 집에서 살면서 화목(和睦)한 가정(家庭)을 이루고 있다.
김(金)씨는 농촌의 실정이 어렵지마는 고향을 지키면서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있는 독농가(篤農)家)인데 효행심(孝行心)이 남달라 한번도 부모님 뜻을 거역한 적이 없으며 집안의 대소사(大小事)를 웃어른과 의논해서 처리하고 출필고반필면(出必告反必面)하고 형제간에는 우애가 돈독(敦篤)한 분이다.
그런데 10여년 전부터 어머니가 중풍에 걸려 거동이 불편해지자 김(金)씨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용하다는 의원(醫院)을 찾아가 좋다는 약을 구해 드리고 온 산야를 헤매면서 약초(藥草)를 캐어다가 달여 드리는 등 부인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자기가 어머니의 식사 시중을 들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방 청소를 하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하여 병간호(病看護)를 하였다.
그리고 김성중(金成仲)씨는 35년 전부터 부모와 처자식(妻子息)을 버리고 소가(小家)를 두어 객지에서 딴 살림을 하던 아버지를 찾아가서 무릎을 끓고 간절히 애원(哀願)하여 집으로 모시고 와서 화해(和解)하도록 했으며 동생과 여동생의 뒷바라지도 착실히 해서 모두 분가(分家)시키고 출가 시켰으며 1남 1녀를 훌륭하게 교육시키고 있다.
김성중(金成仲)씨는 또 부모님 모시듯이 이웃 어른들을 공경(恭敬)하고 불우한 노인들을 도와드리고 동네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앞장서서 자기의 일을 하듯이 몸을 사리지 않는다.
바쁜 농번기(農繁期)에는 남의 일손을 도우는 등 경로사상을 그대로 실천하고 이웃과 다정하게 지내면서 지역주민들의 화합(和合)과 지역사회의 발전에 공헌(貢獻)하고 있다.
이와 같이 김성중(金成仲)씨는 날로 피폐(疲弊)해 가는 농촌을 지키면서 할머니와 부모님을 극진히 봉양(奉養)하고 동생과 자녀들의 뒷바라지도 착실히 하면서 동네의 어른들을 친절하고 공손히 모시고 이웃 사람들과 훈훈한 정(情)을 나누면서 지역사회(地域社會)의 발전에 헌신적(獻身的)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지역주민들이 모두 그의 효행(孝行)을 칭송(稱頌)해 마지 않는다.
효도(孝道)하고 착한 일을 하는 김성중(金成仲)씨의 앞날에 행운(幸運)이 있기를 기원(祈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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