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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례(具順禮) 여사(女史)는 1968년 19세 때에 박정길(朴政吉)씨와 결혼하여 시어머니를 모시고 슬하에 4남매를 두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구여사(具女史)는 영세농민(零細農民)인 남편이 신체가 허약해서 중노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모내기, 김매기, 농작물(農作物) 수확(收穫) 등 농사일을 맡아서 하는 한편, 남의 집 날품팔이와 여름에는 다슬기를 주어다가 파는 등 닥치는 대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열심히 일을 하여 가난에서 벗어 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15년 전부터 시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거동이 불능하게 되었다.
구여사(具女史)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좋은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식사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받아 내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하여 병간호를 하였다.
그런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10여년 전부터 남편이 하반신(下半身)을 못쓰는 불구자(不具者)가 되었다.
구여사(具女史)는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와 남편의 병수발을 함께 하게 되었다.
남편이 노동을 할 수 없게 되자 구여사(具女史)는 실질적인 가장이 되어 농사 일을 도맡아 하면서 두 사람의 간병(看病)에 온갖 정성을 다한 결과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시어머니의 병이 차츰 차도가 있어 지금은 지팡이에 의지하여 문밖출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好轉)되었다.
구여사(具女史)는 또 가난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신념(信念)으로 4남매의 뒷바라지를 착실히 해서 훌륭하게 교육시켰으며 남다른 애향심(愛鄕心)으로 지역사회의 발전(發展)에 헌신적(獻身的)으로 노력하고 있다.
구여사(具女史)는 마을 부녀회 총무를 맡아서 절미(節米)·절수(節水) 운동을 전개(展開)하고 폐품수집(廢品蒐集)에 앞장서서 2백만원의 기금을 마련하여 매년 5월에 마을 노인들을 위로하는 경로잔치를 열고 경로정신의 고취(鼓吹)와 주민 단합에 힘쓰고 있다.
또 마을이 국도변(國道邊)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의 청소와 환경미화(環境美化)에 주력하는 등 지역사회의 발전에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구순례(具順禮) 여사(女史)는 시어머니의 병간호와 남편의 병수발을 들면서 자녀교육과 지역사회에 봉사(奉仕)하는 효부(孝婦)로서 모든 이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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