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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녀(張順女) 여사(女史)는 울진군(蔚珍郡)에서 태어나 1981년 26세 때에 2세 연하(年下)인 군위군(軍威郡)에 사는 농촌청년 김잔관씨와 결혼하였다.
시댁(媤宅)은 가난한 농가였고 남편은 맏아들로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시어머니는 중풍으로 병석(病席)에 누워 계셨다.
장여사(張女史)는 신혼초(新婚初)부터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들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곳 저곳 용하다는 한의원(韓醫院)을 찾아다니면서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반신불수(半身不隨)로 거동이 불능한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젖은 옷을 갈아입혀 빨래를 하는 등 갓 시집온 젊은 새댁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장여사(張女史)는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看病)하였다.
장여사(張女史)는 남편을 도와 바쁜 농사일을 거들면서도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에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지극한 정성(精誠)을 다했기 때문에 지성이면 감천(感天)이라고 병이 차츰 차도(差度)가 있어 지금은 지팡이를 집고 화장실에 다닐 수 있을 만큼 치유(治癒)되었다.
장여사(張女史)의 이 같은 지성(至誠)을 지켜 본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효부(孝婦)라고 칭송(稱頌)이 자자하다.
장여사(張女史)는 또 1991년부터 3년 동안 마을의 부녀회장(婦女會長)을 맡아보면서 거택보호(居宅保護) 독거(獨居) 노인집을 방문하여 빨래와 청소를 해주고 반찬을 만들어 드리는 등 외롭고 소외(疏外)된 불우 노인을 위로(慰勞)하고 도왔으며 매월 경로당(敬老堂)을 방문(訪問)하여 대청소를 실시하고 간식과 음료수를 제공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즐겁게 생활하도록 도와 드렸다.
이와 같이 장여사(張女史)는 핵가족(核家族)시대의 요즘 여성들이 화려하고 편리한 도시로 집중하고 가난하고 불편한 농촌생활을 꺼리는데 가난한 농촌에 시집와서 결혼 초부터 시어머니의 병간호를 1년, 2년도 아니고 무려 14년 동안이나 한결같이 이어왔으며 이웃 노인들을 자기 부모처럼 섬기고 자식들을 훌륭하게 교육시켰으니 참으로 장한 주부이다.
고유(固有)의 윤리도덕(倫理道德)이 무너지고 경로효친 사상이 날로 쇠퇴(衰退)해가는 오늘날 장여사(張女史)야말로 진정한 효부(孝婦)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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