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최옥남(崔玉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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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1995년 4월 25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경산시 남천면
효부(孝婦) 최옥남(崔玉南) 52세

최옥남(崔玉南) 여사(女史)는 1962년 20세 때에 5형제의 장남인 김태술(金泰述)씨와 결혼하여 시부모(媤父母)님을 모시고 시동생(媤同生)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가난한 살림을 꾸려오면서도 화목(和睦)한 가정(家庭)을 이루고 있다.

시댁(媤宅)의 생활은 식구들이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극빈(極貧)하였으나 최여사(崔女史)는 낙망(落望)하지 않고 굳게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최여사(崔女史)는 남편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시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착실히 하였다.

그렇게 어려운 살림을 꾸려오던 중, 원래 불구(不具)의 몸이던 시어머니께서 중풍으로 쓰러져 눕게 되었다.

최여사(崔女史)는 힘드는 농사일을 하면서도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를 해야 했다. 최여사(崔女史)는 시어머니의 식사 시중은 물론이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빨래를 하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병수발을 들었다. 

그렇게 2년여 지난 뒤에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최여사(崔女史)는 자기의 정성(精誠)이 부족해서 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못내 슬퍼하였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얼마 되지 않아 평소에 밤눈이 어두우시던 시아버지께 노인성백내장(老人星白內障)으로 실명(失明)하시게 되었다.

이 때부터 최여사(崔女史)는 시아버지의 손발이 되어 병간호를 해야 했는데 시아버지의 연세가 높아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노인성치매(노망) 현상이 생겨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게 되었다.

식사의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더렵혀진 옷을 갈아 입히고, 빨래를 하고 잠시도 쉴 사이 없이 시아버지의 병수발에 매달려야 했지마는 최여사(崔女史)는 얼굴을 찌푸리거나 내색하지 않고 성심성의(誠心誠意)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看病)하고 있으니 주위(周圍)의 모든 사람들이 드물게 보는 효부(孝婦)라고 칭송이 자자하다.

이와 같이 최옥남(崔玉南) 여사(女史)는 호구(糊口)도 어려운 빈곤(貧困)한 가정에 시집와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들면서 시동생들의 뒷바라지까지 하여 성취(成就)시키고 자녀들을 훌륭하게 교육시켰으니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이 날로 쇠퇴(衰頹)해가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최여사(崔女史)의 효행(孝行)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귀감이 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