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조금자(趙金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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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1995년 4월 25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상주시 사벌면
효부(孝婦) 조금자(趙金子) 51세

조금자(趙金子) 여사(女史)는 1964년 20세 때에 차정우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3형제를 두고 화목하게 살았다. 

조여사(趙女史)가 결혼할 당시 시댁(媤宅)은 2천평의 논이 있었으나 상습 침수지구(沈水地區)에 있었기 때문에 매년 침수로 인한 피해를 입어 생활형편이 어려웠다.

조여사(趙女史)는 농사일을 하면서 남의 집 품팔이도 하고 궂은 일(장례)이나 회갑연(回甲宴)을 도맡아 하면서 부지런히 일을 했다.

그러던 중, 1989년 여름에 남편이 이웃집의 부탁을 받고 지붕을 고치러 위에 올라가 일을 하다가 떨어져서 척추(脊椎)를 다쳤다.

병원에 갔으나 척추를 다쳤기 때문에 고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하반신(下半身)이 마비(麻痺)되어 불구자(不具者)가 되고 말았다.

조여사(趙女史)는 남편이 애처롭기도 하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아이들을 기르고 살아갈 일이 막막하여 한동안 실의(失意)에 빠져 좌절(挫折)했으나 다시 용기를 내어 굳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조여사(趙女史)는 우선 남편의 병간호(病看護)부터 시작했다. 병은 소문을 내어야 한다는 말을 믿고 만나는 사람마다 남편의 사고 얘기를 했더니 사람마다 저마다의 처방(處方)을 들려 주었다.

조여사(趙女史)는 병에 좋다는 약초(藥草)를 구하기 위해서 산에 오르다가 발을 헛디뎌 발목을 삐어 고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남편의 식사 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면서 매일 약쑥 찜질을 6년 동안 한결같이 하면서도 얼굴 한번 찌푸리거나 내색하지 않았다.

이것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열부(烈婦)라고 칭송이 자자했다.

조여사(趙女史)는 이러한 역경(逆境) 속에서도 남자들도 하기 힘드는 농사일을 하면서 직접 경운기(耕耘機)를 몰고 밭을 갈고 작년(94년)에 가뭄이 극심했을 때에도 직접 양수작업(揚水作業)까지 하여 물을 퍼 올리는 등 억척같이 일을 한 결과 지금은 6백평 정도의 과수원(果樹園)도 마련하게 되었다.

조여사(趙女史)는 또 마을 어른들을 공경(恭敬)하고 불우한 이웃 노인들을 방문하여 방 청소와 빨래를 해주고 경로당의 청소도 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조여사(趙女史)의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은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