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김찬영(金讚榮)

페이지 정보

본문

제38회(1995년 4월 25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영천시 창진동
효자(孝子) 김찬영(金讚榮) 56세

김찬영(金讚榮)씨는 농촌을 지키면서 노모(老母)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奉養)하고 동생내외를 부양(扶養)하면서 노인을 공경(恭敬)하고 불우한 이웃을 도우면서 지역사회(地域社會)의 발전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분이다.

김찬영(金讚榮)씨는 연로(年老)하신 어머니 박노미(83세) 여사(女史)를 모시고 아침 저녁으로 문안 드리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만들어 드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려고 온갖 노력과 정성을 다해 왔는데 1990년 여름에 중풍(中風)으로 병석에 눕게 되었다.

김찬영(金讚榮)씨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용하다는 의원(醫院)을 찾아가서 좋다는 약(藥)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는 한편, 부인에게 시키지 않고 자기가 직접 어머니의 식사 시중을 들며 대소변을 받아 내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방안 청소를 깨끗이 하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한 결과 현재는 문밖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호전(好轉)되었다.

김찬영(金讚榮)씨는 또 같은 마을에 사는 동생 김우영(47세)씨가 좌안실명(左眼失明)이고 제수(弟嫂) 지옥사(44세)씨가 지체장애(遲滯障碍) 4급이기 때문에 자활보호대상자(自活保護對象者)로 생활이 어려우므로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도우고 있다.

동생은 두 자녀를 두었는데 성장함에 따라 생활비와 학비를 감당하기가 어렵게 되자 김찬영(金讚榮)씨는 동생 몫으로 논 900평을 동생 앞으로 넘겨주고 노동력이 미치지 못할 때에는 모내기, 추수(秋收) 등을 직접 도와 주고 조카들의 학비도 보태어 주고 있다.

김찬영(金讚榮)씨는 또 이웃에 사는 이해득씨가 94년 10월에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이(李)씨의 소작논 20마지기의 농작물을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여 수확(收穫)과 추곡수매(秋穀收買)까지 해 주었으며 93년에는 자기 논을 소작하는 남승연씨가 냉해(冷害)를 입게 되자 소작료(小作料)를 받지 않았다.

김찬영(金讚榮)씨는 또 해마다 개최하는 경로잔치에 노인들 80여명을 초청(招請)하여 풍성(豊盛)한 음식을 대접하고 노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이 밖에도 김(金)씨는 불우한 이웃을 돕고 가족간의 사랑과 우애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선행(善行)과 마을의 청소와 재활용품(再活用品) 수거 등 농촌환경(農村環境)의 보호운동에도 앞장서서 지역사회의 복지향상(福祉向上)에 솔선수범하고 있어 지역주민들의 정신적(精神的) 지주(支柱)가 되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