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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李賢淑) 여인(女人)은 1992년에 25세 때에 임병한씨와 결혼하였는데 시댁(媤宅)은 시조모님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과 함께 사는 한국의 전통적(傳統的)인 가정이었다.
이현숙(李賢淑) 여인(女人)의 남편은 학부(學府)출신(出身)이라서 남 보기에는 행복(幸福)한 결혼이라고 생각되었지마는 실은 시조모님(84세)과 시아버지(63세), 시어머니(60세)를 모시는 층층시하(層層侍下)이고 시동생과 함께 한 집에서 사는 전통적(傳統的)인 가정이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식물인간(植物人間)과 다름없이 되어 산소호흡(酸素呼吸器)에만 생명을 의지하는 형편이었기에 이여인(李女人)의 희생이 절실한 형편이었다.
이여인(李女人)은 신혼(新婚)의 단꿈을 꾸어 볼 여유나 분가(分家)하겠다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이여인(李女人)이 아니면 병간호(病看護)를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여인(李女人)은 모든 것이 자기의 운명(運命)이고 자기에게 주어진 책무(責務)라고 생각하고 그날부터 날마다 미음과 죽을 끓여 입으로는 드실 수가 없기 때문에 호스를 연결하여 시어머니의 목숨을 이어가야 했다.
이여인(李女人)은 시어머니의 식사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손발을 씻어 드리고, 온몸을 닦아 드리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히고, 방안 청소를 하고 시어머니의 손발이 되어 온갖 정성을 다 바쳐 병간호(病看護)를 하였다.
이렇게 3년 동안을 계속 하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이여인(李女人)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현대문명(現代文明)은 산업이 발달해서 물질이 풍부(豐富)해졌고 모든 물질이 고급화하고 편리화 해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절로 사치스러워졌고 편리한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힘들고 귀찮은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또 물질문명(物質文明)은 정신문화(精神文化)를 짓밟고 종래의 가치관(價値觀)이 전도(顚倒)되어 고유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인 윤리도덕(倫理道德)은 무너지고 경로효친(敬老孝親)의 정신은 날로 쇠퇴하고 있으며 핵가족(核家族) 시대가 되어 부모님을 아예 모시지 않으려는 풍조(風潮)인데 이여인(李女人)은 층층시하(層層侍下)에 시집와서 식물인간과 다를 바 없는 시어머니의 간병(看病)을 3년 동안 모든 정성을 다 바치고 있으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이 본 받을 만한 효행(孝行)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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