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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란(崔順蘭) 여사(女史)는 10년 전에 대전(大田)에서 우체국장직을 맡고 있던 남편 박영일(60세)씨가 정신질환을 앓게 되자 요양(療養)하기 위해서 고향인 죽장면으로 돌아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남편의 병간호(病看護)를 하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간다.
최여사(崔女史)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용하다는 의원(醫院)을 찾아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복용(服用)하고 남편의 정신안정을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 바치고 있으며, 72세의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자녀(3남 2녀)들의 교육에도 힘쓰고 있었는데 1990년에 시어머니가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졌다.
최여사(崔女史)는 어쩔 줄을 몰랐다. 교통이 불편한 죽장(竹長)에서 포항(浦項)까지 나가서 약을 구해와야 하고 정신(精神)이 오락가락하는 남편의 병구완(病救援)과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들어야 하고 농사일은 농사일대로 해야 했다.
최여사(崔女史)는 시어머니의 식사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키고, 더럽혀진 옷을 갈아 입히고, 방안의 청소와 이부자리의 세탁(洗濯) 등 잠시도 쉴 사이가 없었다.
최여사(崔女史)는 또 포항(浦項)에서 자취(自炊)하면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가 빗나가거나 엇길로 가지 않도록 밑반찬을 만들어서 가끔 찾아보아야 하니까 일인 삼사역을 담당해야 하는 고역(苦役)을 치루어야 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마는 그럴수록 용기(勇氣)를 내어 집안과 주위 환경을 깨끗이 하고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더욱 용기를 내어 역경(逆境)을 해쳐나갔다.
이러한 와중(渦中)에서도 최여사(崔女史)는 동네의 길흉사(吉凶事)가 있으면 적극 참여하여 앞장서서 헌신적(獻身的)으로 봉사(奉仕)하는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웃마을 사람들도 효부(孝婦)이고 좋은 이웃이라고 칭송(稱頌)이 자자하다.
지성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현재 남편은 병이 차도가 있어 아내를 도와 농사일도 조금씩 거들어 주게 되었고 자녀들도 모두 착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사회의 역군(役軍)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와 같이 최여사(崔女史)는 정신질환자인 남편과 중풍으로 와병(臥病)중인 시어머니의 병구완을 하면서 자녀들을 교육시켜 성취(成就)시키고 가계를 꾸려가면서 이웃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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