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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曺壽鉉)씨는 포항시(浦項市) 죽장면(竹長面) 하옥리(下玉里)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점원생활을 하다가 1983년에 고향(故鄕)으로 돌아와서 큰형님을 도와 농사를 지으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조(曺)씨는 산간(山間)에 있는 논 몇 마지기의 농사를 지으면서 어려운 생계(生計)를 꾸려가고 있었는데 88년 3월 큰 누님이 결핵(結核)으로 사망하고 이어 큰형 조세현씨도 그 해 7월에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
형이 죽고 나서 1년도 채 못되어서 형수(兄嫂)가 어린 남매를 두고 가출(家出)하고 말았다.
조(曺)씨의 둘째 형 조일현씨는 대구(大邱)에서 막노동으로 그날 그날을 살아가는 형편이라서 부모님을 돌볼 처지가 못되었다.
그래서 조(曺)씨가 부모님을 모시고 어린 조카들(3세, 2세)을 맡아서 길러야 했다.
22세의 청소년 자기의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가족(家族)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조(曺)씨는 척박(瘠薄)한 땅 하옥리(下玉里)의 산자락을 일구면서 역시 결핵(結核)으로 앓고 누워 계시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밥 짓고 빨래하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아버지를 모시고 어린 조카들을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는데 91년의 태풍(颱風) 글레디스와 92년의 태풍 셀마로 2년간 땀흘려 지은 농사를 고스란히 잃어 버리고 92년에는 또 다시 여동생이 결핵으로 사망(死亡)하고 연이어 93년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이와 같이 조(曺)씨의 가족은 누나와 큰형과 어머니가 모두 결핵으로 투병(鬪病)하다가 죽어갔으나 시골의 가난한 생활이라서 병원에 입원할 처지도 못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曺)씨는 혈육(血肉)이 연달아 죽고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생활을 괴롭혀도 원망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분노(忿怒)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더욱 용기(勇氣)를 내어 꿋꿋하게 살면서 8순(旬)의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면서 조카들의 뒷바라지를 착실히 하고 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연속되는 불행 앞에 좌절(挫折)하고 실의에 빠지거나 폐인(廢人)이 되겠지만 조(曺)씨는 이러한 환경에 구하지 않는 씩씩한 모범 청년이었다.
조수현(曺壽鉉)씨는 마을의 어른들에게도 친절하고 공손(恭遜)하며 마을에 길흉사가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기의 일을 하듯이 앞장서서 일하고 봉사(奉仕)하는 정신을 실천(實踐)한다.
그래서 하옥리(下玉里)의 사람들의 뜻을 모아 이장(里長)으로 추대(推戴)해서 죽장면(竹長面)에서 최연소자(29세) 총각 이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효자(孝子)라고 칭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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