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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순(成慶順) 여사(女史)는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1964년 18세 때에 정해성씨와 결혼하였다.
성여사(成女史)의 남편은 자전거점을 경영하면서 맏아들로서 시조모님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결혼한지 1년 만에 시어머니가 별세(別世)하자 시조모(媤祖母)님과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당시 8세의 시동생과 10세의 시누이를 돌보아야 했다.
자전거점의 수입으로는 생계(生計)가 어려운데 방 두칸의 사글세방에서 7명의 식구가 생활하려니까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성여사(成女史)는 이러한 어려운 환경(環境) 속에서도 시할머니와 시아버지를 극진(極盡)히 모시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18년간 이어오던 자전거점 문을 닫아야 했고 남의 채무보증(債務保證)이 잘못되어 천여만원의 빚을 떠안게 되어 가족(家族)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성여사(成女史)는 대명시장에서 채소와 과일 노점(露店)을 차려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 하는 일이라 힘이 들었지만 꾸준히 계속하면서 점심시간이 되면 시할머니와 시아버지께 따뜻한 점심을 대접하기 위해서 10여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으로 갔다.
성여사(成女史)는 또 시동생과 시누이가 엄마 없는 설움을 느끼지 않도록 알뜰하게 뒷바라지하여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취직하고 성혼(成婚)해서 분가(分家)시키고 출가(出嫁)시켰다.
성여사(成女史)는 10여년 동안 노점상을 경영하면서 근검절약(勤儉節約)하여 알뜰히 모은 돈으로 빚을 갚고 조그마한 한옥(韓屋)을 한 채 사서 두 어른을 편안하게 모시게 되었으며 이웃 노인들을 초청(招請)하여 경로잔치를 열고 사랑방을 꾸며서 경로당(敬老堂)처럼 노인들이 모여서 즐겁게 노시도록 하였다.
그러던 중 1970년부터 시할머니께서 거동이 불편해서 자리에 눕게 되자 대소변을 받아 내야 했다.
게다가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시아버지도 노환(老患)으로 매일 약을 먹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두 어른의 병구완(病救援)을 함께 하기란 어려웠지만 성여사(成女史)는 내색(內色)하지 않고 정성껏 시봉(侍奉)하였다.
1994년 6월에 시아버지가 노모(老母)를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시고 지금은 99세(백수(白壽)의 시할머니께 모든 정성을 다 바쳐 시봉(侍奉)하는 성여사(成女史)를 지켜보는 주민들이 그의 효행(孝行)을 상신(上申)해서 94년 11월에 전국 제 1회 효부대상 장려상(獎勵賞)을 수상(受賞)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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