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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자 여사는 1944년 성서에서 출생하여 1964년 20세 때에 6남매 중 장남인 배외근씨와 결혼하였다. 김여사의 시댁에는 경제력이 없는 시부모님과 시동생, 시누이가 5명 있었다.
그래서 김여사는 술 배달을 하는 남편을 도우기도 하고 날품팔이도 해 가면서 어려운 가계를 꾸려가는 한편, 알뜰히 저축하여 시동생과 시누이를 성혼시켜 분가해 주고 출가시켰다. 그리고 조그마한 집 한 채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언제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일에는 궂은 일도 따라 다니기 마련이다. 온갖 어려움과 고생을 참아가면서 시동생과 시누이의 뒷바라지를 해서 모두 성가시키고 나서 집도 마련했으니까 이제 한숨 돌리려고 하는데 남편이 원인도 모르게 시력이 점점 약해지더니 마침내 악화되어 결국 실명하고 말았다.
남편이 앞을 못 보게 되자 김여사는 남편을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실명된 눈은 회복되지 않았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입원하게 되었다. 엄청난 병원비와 약값을 감당할 수가 없어 기본적인 생계까지 위협받게 되어 하는 수 없이 퇴원해서 자가치료를 받게 되었다.
김여사는 이렇게 한꺼번에 닥쳐 온 두 사람의 불행 앞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지만 조금도 좌절하거나 굴하지 않고 더욱 용기를 내어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하였다. 김여사는 어릴 때부터 효는 모든 덕행의 근본이라는 것을 몸에 익혀 왔기 때문에 평소에도 연로하신 시부모님(팔순)을 극진히 봉양해 왔는데 중풍으로 병석에 눕게 되자 효성이 더욱 지극하였다.
김여사는 중풍으로 누워 계시는 시어머니의 식사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지성으로 병간호를 하는 한편, 남편에 대한 애정도 다름없이 오히려 시력장애자가 된 남편이 부정적 인생관이나 편협된 사고방식으로 좌절하거나 실망할까봐 용기를 심어주고 노동이 주는 성취감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에 남편을 데리고 화원양조장에 가서 남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주변의 찾기 쉬운 동네에 배달을 남편과 함께 손수레를 밀고 끌고 하면서 직접 배달하고 있다.
오전에 술 배달을 끝내고 오후에는 민간요법으로 남편의 시력회복에 좋다는 약과 시어머니의 중풍에 좋다는 약을 구하기 위해 산과 들을 헤매어 다니기도 하고 또 사고로 인해서 다리를 다쳐 불구자가 된 시동생을 위로하기 위해서 수시로 재활원을 찾기도 한다. 이렇게 김여사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병구완 뿐만 아니라 동기간의 우애도 돈독히 하여 가족들을 위해서는 눈물겹도록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세상 이치인데 김여사의 시아버지는 어려운 가정형편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술로서 소일한다. 그러나 김여사는 한번도 불평한 적이 없다. 이러한 효행을 지켜 보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효부라고 칭송이 자자하다.
화원지역도 도시화로 막걸리 소비량이 줄어들어 술 배달로 벌어들인 수입금으로는 여섯 식구가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김여사는 근검절약하는 한편, 남의 집 날품팔이 등 닥치는 대로 막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지마는 가끔 찾아오시는 이웃 노인을 반가이 맞이하고 음식을 대접하고 때로는 이웃집 노인들을 초청해서 음식을 대접하고 시어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하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하여 효도한다.
김여사는 또 자녀들에게도 말보다 직접 몸으로 실천해서 보임으로써 부모님에게 효도하도록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자녀들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효도하고 있다.
김여사는 정상적인 사람이 장애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행여나 남편이 장애자이기 때문에 좌절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과 또 남편이 장애자이기 때문에 시부모님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앙금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항상 김여사 자신부터 명랑하고 건강한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서구의 물질문명이 밀려오고부터 우리의 전통적인 윤리도덕이 무너지고 따라서 경로효친 사상이 날로 쇠퇴해가는 오늘날, 사람들은 부모를 모시지 않는 핵가족을 원하고 있는데 김여사는 6남매의 장남에게 시집와서 맏며느리로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난한 살림살이를 꾸려가면서 알뜰히 저축하여 다섯이나 되는 시동생과 시누이를 성혼시켜 분가해주고 출가시켰으며 남편이 앞을 보지 못하는 불구자가 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는데 시어머니마저 중풍으로 와병하게 되어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하는 한편, 남편의 손발이 되어야 하고 여자의 힘으로 가계를 꾸려나가야 하니까 그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니지마는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면서 도리어 남편이 희망을 잃을까 염려하고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용기를 북돋우고 있으니 김여사야말로 우리 시대에 보기 드문 효부이고 열부이다.
우리 모두 김여사의 효행을 본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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