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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귀순(姜貴順) 여사(女史)는 1953년 20세 때에 동해안(東海岸)의 작은 어촌(漁村)마을 강구면(江口面) 금진리(金津里)에 사는 이연우씨와 결혼(結婚)하여 시어머니를 모시고 슬하에 6남매를 두고 화목(和睦)한 가정(家庭)을 이루고 살아왔다.
강여사(姜女史)는 한쪽 눈을 실명(失明)한 시어머니를 40년간 모시고 살아 왔는데 이제는 자신(自身)의 나이도 63세이고 시어머니의 연세(年歲)가 90세인데도 지극(至極)한 정성으로 시봉(侍奉)하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선원으로 취업해서 생계를 유지(維持)해 오던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截斷)하는 부상을 입게 되어 노동력을 상실(喪失)하고 집에서만 생활하게 되었다.
강여사(姜女史)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도 좌절(挫折)하거나 낙망(落望)하지 않고 막노동을 하고 생선할복작업(生鮮割腹作業) 등 불굴(不屈)의 정신(精神)으로 생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강여사(姜女史)는 연로하신 시어머니의 건강(健康)을 염려하여 조석으로 문안 드리고, 일을 하다가도 틈을 내어 집으로 달려 가서 시어머니의 식사 시중을 들고, 어디 불편한 데가 없는가 살피고, 일을 쉬는 날에는 시어머니 옆에서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세상 돌아가는 온갖 이야기를 해 드리면서 시어머니의 건강에 유의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하는 한편, 한쪽 다리를 잃고 장애자(障碍者)가 되어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모든 것을 숙명(宿命)으로 여기고 한마디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는다.
이러한 강여사(姜女史)의 효행(孝行)과 열행(烈行)을 보고 지역주민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칭송해 마지 않는다.
강여사(姜女史)는 또 마을의 경로당(敬老堂)을 수시로 방문(訪問)해서 청소를 해 주고 자신의 어려운 생활비를 쪼개어 술과 음료수를 사서 노인들에게 대접하고 같이 즐겁게 놀기도 한다.
이와 같이 강여사(姜女史)는 한쪽 눈이 먼 시어머니를 40여년 지극(至極)한 정성으로 모시어 90세의 장수(長壽)를 누리게 했으며 한쪽 다리를 잃은 남편을 보살피고 있으니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효(孝)와 열(烈)을 겸비(兼備)한 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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