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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숙(朴泰淑) 여사(女史)는 이성배(李盛培)씨와 결혼하였는데 남편이 일정한 직업이 없어 가정형편이 어려웠으나 시어머니를 모시고 화목(和睦)하게 살고 있다.
박여사(朴女史)의 시어머니는 벙어리에 귀머거리이고 양다리가 마비(痲痺)되어 보행(步行)이 불능한 불구자(不具者)였다.
그래서 박여사(朴女史)는 신혼 초부터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들어야 했는데 남편이 직장을 구하러 떠난 뒤 1년 동안은 집안의 살림살이를 맡아서 하면서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沐浴)을 시켜 드리고,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시중을 들지 않으면 안되니 그 고충(苦衷)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박여사(朴女史)는 지극(至極)한 정성으로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를 하면서 남편과 함께 빈터에 천막을 치고 야채(野菜)와 과일 등의 노점상을 하면서 끼니 때가 되면 집으로 달려가서 시어머니의 식사를 챙겨 드리고 용변을 처리하는 등 온갖 정성과 노력으로 시봉(侍奉)하고 있다.
박여사(朴女史)는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노점상으로 여섯 식구가 먹고 살기에도 바쁘지마는 하루 빨리 내 집을 마련해서 시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겠다는 일념으로 근검절약(勤儉節約) 각고(刻苦)의 노력 끝에 집도 장만해서 시어머니를 모실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고 있다.
부유(富裕)한 가정의 건강(健康)한 부모도 모시지 않으려 하는 세상인데 박여사(朴女史)는 벙어리에 귀먹고 양다리가 마비(麻痺)되어 걸을 수가 없는 시어머니의 수발을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10년도 넘게 시중을 들면서도 한마디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시봉(侍奉)하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입을 모아 효부(孝婦)라고 칭송해 마지 않는다.
서구문명이 밀려오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미풍양속(美風良俗)과 전통적인 윤리도덕(倫理道德)이 땅에 떨어지고 따라서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이 날로 쇠퇴(衰退)해가는 오늘날 박여사(朴女史)는 여섯 식구의 살림살이도 어려운데 노점상을 해 가면서 불구자인 시어머니의 수발을 들면서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있으니 박여사(朴女史)의 효행(孝行)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귀감(龜鑑)이 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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