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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자(金敏子) 여사(女史)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릴 때부터 가족(家族)의 생계를 위해서 가장(家長) 역할을 하다가 1972년 21세 때에 결혼하였다.
김여사(金女史)의 시댁(媤宅) 또한 가난한데다가 남편이 사고로 직장을 가질 수가 없어 김여사(金女史)가 가장(家長) 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김여사(金女史)는 결혼 초부터 닥치는대로 막노동을 해서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維持)하고 있다.
김여사(金女史)의 남편은 차남인데 형(兄)이 6·25 전쟁에서 전사(戰死)했기 때문에 시어머니를 모시게 되어 김여사(金女史)는 지극(至極)한 정성으로 모시고 있으나 워낙 연세가 많아서(109세·경북 최고령) 수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해져 여러 가지 시중을 들어야만 한다.
평소에 좋아하시는 음식을 정성(精誠)껏 만들어 드리고, 목욕을 자주 시켜드리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손수레에 태워 경로잔치와 각종 행사에 빠짐 없이 모시고 가서 소풍(逍風)을 시켜 드리는 등 시어머니의 건강(健康)에 세심한 주의(注意)를 기울이고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서 노력(努力)하고 있다.
김여사(金女史)는 결혼 당시부터 신체장애(身體障碍)로 생활력이 없는 시동생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한편, 남편 몫을 대신하여 막노동을 해서 저축(貯蓄)한 돈으로 결혼시켜 분가해 주었으며 시동생이 정신적(精神的)으로 안정을 찾도록 하고 시어머니의 걱정을 덜어 드리고 마음을 기쁘게 해드렸다.
그러던 중, 1990년 6월에 남편이 간암(肝癌)으로 치료비 등 많은 빚을 진 후 사망(死亡)하였다.
김여사(金女史)는 남편 잃은 슬픔에 잠겨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시어머니와 1남 3녀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목욕탕의 때밀이 등 닥치는 대로 막노동을 해서 호구지책(糊口之策)을 해결하고 있다.
김여사(金女史)는 현재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되어 정부의 도움을 받고 있으나 항상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웃음을 잃지 않고 시어머니(109세)를 지극(至極)한 정성으로 모실 뿐만 아니라 마을의 길흉사(吉凶事)에도 앞장 서서 도우고 있으니 모두가 효부(孝婦)라고 칭송이 자자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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