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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한(金重漢) 여사(女史)는 1956년 20세 때에 강운영씨와 결혼하여 시부모님을 모시고 슬하에 3남 3녀를 두고 화목(和睦)하게 살아왔다.
김여사(金女史)의 남편은 평소에 술을 좋아했는데 술 때문에 건강(健康)이 악화(惡化)되어 1984년에 사망하였다.
그리고 시어머니도 노환(老患)으로 역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아버지께서도 젊은 시절부터 술을 좋아하시어 시어머니와 자주 다투고 집안에 풍파(風波)가 잦았는데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5년 후에 중풍(中風)으로 앓아 눕게 되었다.
김여사(金女史)는 백방으로 수소문해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가서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시탕(侍湯)하고 정성껏 간병(看病)하였더니 천우신조(天佑神助)로 회춘(回春)하시더니 94년부터 다시 악화(惡化)되어 기동불능(起動不能)으로 문밖 출입도 못하게 되었다.
지금은 3남 3녀의 자녀들은 모두 분가하고 출가(出嫁)했으며 집에는 시아버지와 김여사(金女史)만 남아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김여사(金女史) 자신도 3년 전부터 고혈압(高血壓)으로 가까운 의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근래에 병(病)이 악화되어 95년 11월에 부산의 백병원에서 진료(診療)를 받았더니 심장판막증(心臟瓣膜症)으로 판명되어 매월 2회씩 부산의 백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시아버지의 식사 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옷을 갈아 입히고, 청소와 빨래를 하는 등 병수발을 들어야 하니 그 고충(苦衷)이 오죽 하겠는가.
김여사(金女史)가 통원치료(通院治療)를 받으러 갈 때에는 태백시(太白市)에서 거주하는 동서(同壻)를 불러다가 시아버지의 간병(看病)을 부탁하고 다녀 오곤 한다.
이렇게 자신의 지병(持病)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시아버지의 병간호(病看護)를 5년도 넘게 하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효부(孝婦)라고 칭송이 자자하다.
이와 같이 김여사(金女史)는 어릴 때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현모양처(賢母良妻)의 부덕(婦德)을 닦아 강씨(姜氏) 가문에 시집와서 남편과 사별하고 자기자신도 지병(持病)으로 고생하면서 중풍환자(中風患者)인 시아버지의 병간호(病看護)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고 있으니 출중(出衆)한 효부(孝婦)가 아닌가.
그의 앞날에 천우(天佑)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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