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권인순(權仁順)

페이지 정보

본문

제39회(1996년 4월 24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영양군 석보면
효부(孝婦) 권인순(權仁順) 38세

권인순(權仁順) 여사(女史)는 1977년 18세 때에 김정태씨와 결혼하여 남편이 장남이 아닌데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왔다.

권여사(權女史)의 시가(媤家)는 가난한 농가였으나 권여사(權女史) 부부는 새벽 일찍 밭에 나가서 저녁 늦게까지 농사일을 하면서 시부모님을 극진(極盡)히 봉양(奉養)하고 화목(和睦)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오면서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그런데 시집온지 10년이 되던 해에 남편이 간경화증(肝硬化症)으로 병석(病席)에 눕게 되었다.

권여사(權女史)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간병(看病)했으나 정성의 보람도 없이 87년 7월에 남편은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고 말았다.

권여사(權女史)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눈앞이 캄캄하고 애통(哀痛)함을 금할 수 없어 몇 번이나 남편의 뒤를 따라 죽으려고 생각했으나 늙으신 시부모님과 슬하의 1남 2녀를 생각해서 마음을 고쳐먹고 자식(子息)을 잃고 비통(悲痛)해 하시는 시부모님을 위로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였다.

이렇게 해서 권여사(權女史)는 스물여덟의 꽃다운 나이에 청상(靑孀)이 되어 모든 가사를 도맡아 하게 되었다.

권여사(權女史)는 청상(靑孀)이 된 자신(自身)의 처지를 남들이 흉보지나 않을까 염려해서 언행을 더욱 더 조심하고 시부모님께 조석으로 문안 드리고 드나 들 때에는 반드시 아뢰고 하루 세끼의 식사를 꼭 챙겨 드리고 농한기(農閑期)땐 틈을 내어 1년에 한 두 번씩 친척(親戚) 집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안부도 묻고 며느리라는 생각보다 친딸처럼 시부모님께 효도(孝道)함으로써 시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 드리고 있으니 동네 사람들이 모두 효부(孝婦)라고 칭송(稱頌)이 자자하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농촌을 싫어하고 도시를 선호하며 부모님을 모시지 않으려 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이혼하고 돌아서려 하는데 권여사(權女史)는 꽃다운 나이에 남편과 사별(死別)하고도 시부모님을 극진(極盡)히 모시고 농사를 지어서 가계를 꾸려나가고 있으니 요즘 젊은이로서는 보기 드문 효부(孝婦)이니 현대사회의 모든 여성들이 본 받아야 할 주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