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김경월(金慶月)

페이지 정보

본문

제39회(1996년 4월 24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상주시 중동면
효부(孝婦) 김경월(金慶月) 29세

김경월(金慶月) 여인(女人)은 1992년 25세 때에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在職)하고 있는 김기태(金起台)씨와 결혼(結婚)하여 미래의 인생을 설계하고 행복한 신혼생활(新婚生活)을 하고 있었다.

김여인(金女人)은 남편의 권유도 있고 해서 결혼 후에도 상주산업대학에 다니면서 학업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평소에 건강(健康)하시던 시어머니께서 원인 모를 병(病)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여 병원에서 진료(診療)를 받고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복용했으나 병세는 점점 악화(惡化)되어 마침내 하반신(下半身)이 마비(痲痹)되어 거동이 불능(不能)하게 되었다.

김여인(金女人)은 신혼의 꿈도 잠시 뿐이었고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沐浴)을 시켜드리고, 빨래를 해야 하는 등 시어머니의 병구완(病救援)을 하기 위해서 학업도 중단(中斷)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되는 새댁이 자기 인생을 추구하기 위해서 닦던 학업도 중단하고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에 열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한마디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간병(癎病)하였다.

남편의 박봉(薄俸)으로 어렵게 살아왔는데 시어머니의 치료비(治療費) 지출이 많아지고 보니 시아버지도 남편도 차츰 웃음을 잃어가는 것을 느꼈으나 김여인(金女人)은 항상(恒常) 웃음을 잃지 않고 시아버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남편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더욱 정성(精誠)을 다하고 있으니 이것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효부(孝婦)라고 칭송(稱頌)해 마지 않는다.

그러던 중,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1995년 12월에 시아버지께서 문중(門中) 일로 고향인 안동(安東)에 가시다가 교통사고로 운명(殞命)하시니 온 가족의 애통(哀痛)함은 말할 수가 없었다.

김여인(金女人)도 그 동안 시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에 많은 의지(依支)가 되었는데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모든 일이 더욱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나 김여인(金女人)은 더욱 용기(勇氣)를 내어 시어머니의 병구완에 온갖 정성을 쏟고 있으니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귀감이 되며 그의 앞날에 행운(幸運)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