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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화(孫慶和) 여사(女史)는 6남매의 맏이인 양송암(梁柗岩)씨와 결혼하여 어려운 가정형편인데도 시부모(媤父母)님을 모시고 시동생 3명과 시누이 2명의 뒷바라지를 하여 분가(分家)해 주고 출가시켰다.
손여사(孫女史)가 결혼 후 9년이 되던 해에 시어머니(78세)께서 갑자기 두 눈이 멀게 되어 일상생활에 많은 불편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손여사(孫女史)는 시어머니가 외출하실 때에는 손발이 되어 안내해 드리고 일상생활의 모든 시중을 들어 드려야만 했다.
그런데 13년 전,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시어머니께서 중풍으로 쓰러졌다.
손여사(孫女史)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시탕(侍湯)하고 식사의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등 지극(至極)한 정성으로 간병(看病)하였다.
이렇게 어려운 병간호(病看護)를 하고 있는데 92년 4월에 시아버지(84세)께서 노환(老患)으로 돌아가시자 홀로된 시어머니가 더욱 쓸쓸해 하실까봐 항상 시어머니 곁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 드리고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다.
장병(長病)에 무효자(無孝子)라고 하는데 손여사(孫女史)는 무려 수십 년 동안 장구(長久)한 세월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에 정성을 쏟고 있으니 이것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효부(孝婦)라고 칭송(稱頌)해 마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公務員)인 남편의 박봉(薄俸)을 쪼개어 알뜰하게 살림을 살아 시동생과 시누이를 성취(成娶)시켜 분가해 주고 출가(出嫁)시켰으며 자녀들을 훌륭하게 교육시켜 장남과 장녀는 결혼시켰고 막내 아들은 서울의 대학에 재학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손여사(孫女史)는 시부모님을 극진(極盡)히 모시고 특히 앞을 보지 못하고 중풍으로 와병(臥病) 중인 시어머니를 수십 년 동안 병수발을 들면서도 시동생과 시누이의 뒷바라지를 해서 독립시키고 우애(友愛)를 돈독히 하고 있으며 자녀들을 훌륭하게 교육시켰으니 효부(孝婦)이고 장한 어머니이다.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이 날로 쇠퇴(衰退)해 가는 오늘날 손여사(孫女史)의 효행(孝行)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본(本)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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