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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호(姜泰鎬)씨는 가난한 농가(農家)의 장손(長孫)으로 태어나 18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가장으로 와병(臥病)중인 할머니와 어머니의 간병(看病)과 동생들의 뒷바라지까지 해 온 효자(孝子)이다.
10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년 후에 어머니가 당뇨병(糖尿病)에 합병증이 생겨서 백내장(白內障)으로 실명상태(失明狀態)에 이르자 병원치료는 물론이고 용하다는 약국을 찾아가서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병구완(病救援)을 했으나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점점 악화되어 바깥 출입(出入)도 못하게 되었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할머니마저 80세의 고령이라 건강(健康)이 좋지 않아 두 어른을 함께 곁에서 보살펴 드려야 하게 되었다.
강태호(姜泰鎬)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심히 농사를 지었으나 산비탈의 전답 몇 마지기로는 식구들의 호구(糊口)에도 바쁘고 할머니와 어머니의 약값과 동생들의 학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 고민하면서 내가 쓰러지면 누가 가족들을 돌봐 주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공부해서 1993년에 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청송(靑松) 감호소(監護所)에 근무하게 되었다.
강태호(姜泰鎬)씨는 안동(安東)에서 청송(靑松)까지 매일 출퇴근하고 있으며 95년에 결혼하였으나 오붓한 결혼생활이나 여행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다만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할머니와 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와 건강에 전심전력(全心全力)을 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강태호(姜泰鎬)씨의 부인도 남편의 뜻을 받들어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에 지극(至極)한 정성을 쏟고 있으니 이것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요즘 보기 드문 효자(孝子)이고 효부(孝婦)라고 칭송이 자자하다.
이와 같이 강태호(姜泰鎬)씨는 소년가장(少年家長)으로 자라나도 조금도 마음이 어둡지 않고 꿋꿋한 의지(意志)로 지금까지 10년 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할머니와 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를 지극(至極)한 정성으로 하고 있으며 동생들의 뒷바라지까지 하고 있으니 그 효행(孝行)에 멀지 않아 천녹(天祿)이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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