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김순득(金順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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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1996년 4월 24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안동시 사상동
효부(孝婦) 김순득(金順得) 46세

김순득(金順得) 여사(女史)는 결혼 후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 권(權)씨와의 사이에 1남 4녀를 두고 화목(和睦)하게 살아오던 중 1989년에 제재소(製材所)에 다니던 남편이 복막염(腹膜炎)으로 갑자기 사망(死亡)하였다.

김여사(金女史)는 남편이 돌아가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 눈앞이 캄캄하고 어떻게 해야할 줄을 몰랐다.

초종범절(初終凡節)을 마치고 애통(哀痛)한 심정을 가눌 길 없었으나 아들을 잃고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계시는 시어머니와 당장에 어린 자녀들의 호구(糊口)가 바빠서 시어머니를 위로하고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 노릇을 해야만 했다.

농번기(農繁期)에는 닥치는 대로 삼베에 물들이는 작업과 밤늦게까지 삯일을 억척스럽게 해서 겨우 식구들의 생계를 유지(維持)해 오고 있었다.

김여사(金女史)는 이렇게 힘드는 일을 하면서도 시어머니에 대한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조석으로 문안 드리고 점심 때가 되면 일하다가도 집으로 달려 가서 반드시 챙겨 드리고 불가피하게 먼곳으로 품을 팔러 갈 때에는 이웃집에 부탁해서 식사를 제때에 챙겨 드릴 수 있도록 하는 등 지극(至極)한 정성으로 모시고 농촌의 살림이라고는 15평 정도(程度)의 집과 200평의 밭이 있을 뿐 극히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시동생들에게는 사랑으로 대하여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여 시어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있다.

이러한 김여사(金女史)의 효행(孝行)을 본 받아 자녀들도 할머니를 극진(極盡)히 모신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효부(孝婦) 집에 효자(孝子) 났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김여사(金女史)는 마을의 부녀회 부회장직을 맡아 동네의 일에 솔선수범(率先垂範) 봉사하고 있으며 특히 해마다 개최하는 경로(敬老)잔치 때에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일을 처리해 나가고 이웃 어른들을 친부모(親父母)처럼 공경(恭敬)하며 자기자신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이웃에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다정하게 지내고 있으니 김여사(金女史)의 효행(孝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의 귀감(龜鑑)이 되고 있으며 그의 앞날에 축복(祝福)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