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김양자(金良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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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1996년 4월 24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경주시 황성동
효부(孝婦) 김양자(金良子) 33세

김양자(金良子) 여인(女人)은 신학대학(神學大學) 유아교육과(幼兒敎育科)를 졸업하고 전남(全南) 소록도(小鹿島) 나환자촌(癩患者村)에서 2년 동안 남들이 꺼려하는 나환자들의 간호(看護)에 헌신적(獻身的)으로 봉사(奉仕)하다 1989년 6월에 손명호씨와 결혼하였다.

김여인(金女人)은 결혼 당시부터 시어머니가 지병(持病)인 류마티스관절염(關節炎)으로 고생하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병석(病席)에 눕게 되자 병원에서 진료(診療)를 받고 있는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젊은 시절부터 술로 살아 온 시아버지가 또 심장질환(心臟疾患)으로 자주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가 하니까 병간호(病看護)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으나 한번도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지극(至極)한 정성으로 간병(看病)하고 있다.

이것을 지켜보는 주민들은 모두 효부(孝婦)라고 칭송(稱頌)해 마지 않는다.

김여인(金女人)은 또 결혼 당시부터 병든 시부모님 뿐만 아니라 정신박약(精神薄弱)에다가 정신질환(精神疾患)을 앓고 있어 일상생활조차 남의 도움이 필요한 시동생을 보살펴 왔는데 결혼도 못하고 있는 시동생으로 말미암아 시부모님의 마음이 편하지가 않으므로 역시 정신박약자인 여자와 결혼시켜 한 집에서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보살펴 주고 있다.

이렇게 해서 시동생의 정신적 안정(安定)과 시부모님의 근심 걱정을 덜어 드리고 있으니 물질적인 봉양(奉養)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시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엎친데 덮치는 격으로 김여인(金女人)의 남편이 허리를 다쳐 허리 질환(疾患)으로 정상적인 노동능력이 없으므로 김여인(金女人)이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 노점상(露店商)을 열어 여덟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김여인(金女人)은 전세집에 살면서 노점상(두부, 어묵 등의 판매)하면서도 이웃 노인들에게는 두부나 어묵을 돈 받지 않고 그냥 드리는 등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이와 같이 김여인(金女人)은 병든 시부모님의 병간호를 극진(極盡)히 하는 한편, 불구자인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알뜰히하고 불우한 이웃을 진실한 마음으로 도우고 있으니 효부(孝婦)이고 사랑의 실천자로서 그의 천사(天使)같은 착한 마음과 숭고한 인간애(人間愛)에 머리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