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박명이(朴明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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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1996년 4월 24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포항시 남구
효부(孝婦) 박명이(朴明伊) 40세

박명이(朴明伊) 여사(女史)는 20여년 전에 이만우(李萬雨)씨와 결혼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시어머니(76세)와 시이모(72세)를 모시고 지체장애자(肢體障碍者)인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성실근면(誠實勤勉)하게 살아왔다.

그러던 중, 5년 전부터 시어머니께서 신경통(神經痛)으로 거동이 어렵게 되자 박여사(朴女史)는 백방(百方)으로 수소문해서 신경통에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시탕(侍湯)하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하여 간병(看病)하는 한편, 사고무친(四顧無親)하여 생활보호(生活保護)대상자인 시이모님을 한 집에 모시고 있는데 정신이상(精神異狀) 증세가 있어 두 노인의 병간호(病看護)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게다가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이 지체장애자(肢體障碍者)인 아들의 뒷바라지까지 해야하니까 그 고충(苦衷)은 참으로 눈물 겨운 일이다.

박여사(朴女史)는 생활이 어려워서 포항(浦項) 남부시장(南部市場)에서 생선장사로 생계를 유지해 가고 있으면서 시어머니와 시이모님의 병구완(病救援)을 하면서 아들의 뒷바라지까지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짜증을 내거나 불평하지 않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명랑하게 살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효부(孝婦)라고 칭송하고 있다.

서구문명이 들어오면서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미풍양속(美風良俗)과 전통적인 윤리도덕(倫理道德)이 무너지고 따라서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思想)이 땅에 떨어진 오늘날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산업사회가 불러 온 핵가족 시대의 물결을 타고 사치(奢侈)와 편리만을 추구(追求)하는 개인주의에 편승(便乘)해서 건강한 시부모님도 모시지 않으려고 하는데 박여사(朴女史)는 요즘 젊은이로서는 보기 드문 효부(孝婦)이다.

이와 같이 박명이(朴明伊) 여사(女史)는 생계가 어려워 시장에 나가서 생산장사를 하여 가계(家計)를 꾸려가면서도 병든 시어머니와 시이모님의 병간호(病看護)에 모든 정성을 다 바치고 지체장애자(肢體障碍者)인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으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주부(主婦)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