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정화(李丁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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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1997년 4월 21일)
열행상(烈行賞)
경북 상주시 외남면
열부(烈婦) 이정화(李丁和) 68세

이정화(李丁和) 여사(女史)는 1945년 16세 때에 11세나 연상(年上)인 이민구(李民九)씨와 결혼하여 50년 동안 숱한 역경(逆境)을 헤치고 살아왔다.

이여사(李女史)가 시집와서 보니까 끼니를 이어가기조차 어려운 가난은 뒷전이고 남편이 음성나환자로서 사회적인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의 행동도 제약을 받아야 하는 처지(處地)에 놓여 있었다. 이여사(李女史)는 아무에게도 호소할 길이 없는 아픈 가슴을 안고 16세의 꽃다운 나이의 새댁이 하늘이 맺어준 인연(因緣)이라고 체념(諦念)하고 모든 것을 희생(犧牲)하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이여사(李女史)는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50여년을 살아오면서 정신적(精神的)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苦痛)과 육체적으로 손수 논밭을 갈고(耕作) 남의 집 날품팔이와 막노동을 하고 산나물을 채취해서 가족들을 부양(扶養)해 왔다.

1960년에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자 남편의 형제 3명은 모두 사회적인 활동이 자유스러운 대도시로 떠나가 버리고 이여사(李女史)와 시어머니와 남편이 남게 되었다. 그런데 1975년에 시어머니께서 7순의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졌는데 거기에다가 음성나환증세까지 보여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7순까지 살았으니 죽는 것이 낫다고 했으나 인명은 재천(在天)이라 어디 죽고 사는게 그리 쉬운 것인가. 94년 10월까지 94세를 살면서 20년 동안 기나긴 투병(鬪病)생활을 하였다.

이여사(李女史)는 20년 동안 날품팔이를 해서 시어머니와 남편을 봉양(奉養)하면서 시어머니의 식사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옷을 갈아 입히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간병(看病)하였다.

이웃 사람들이 차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만큼 지극한 정성(精誠)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여사(李女史)는 꽃다운 나이에 가난하고 음성나환자(陰性癩患者)인 남편에게 시집와서 이 세상에서 나 한사람 희생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는 나환자의 가정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슬하에 혈육(血肉)도 두지 않고 20년 동안이나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를 했으며 지금도 자활보호대상자로 남편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서 날품팔이를 하고 있으니 모두가 본 받을 만한 열부(烈婦)이며 이여사(李女史)의 남모른 고독과 인내를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