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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金英淑) 여사(女史)는 권혁문(勸赫文)씨와 결혼하여 슬하(膝下)에 3남 1녀를 두고 농사를 지으면서 단란하게 살아왔다.
김여사(金女史)의 시아버지는 1950년 6.25 전쟁 때에 전사한 국가유공자(國家有功者)이고 남편도 성실근면(成實勤勉)한 모범(模範) 청년이었는데 5년 전에 낙상(落傷)으로 병원에서 치료(治療)를 받았으나 거동이 불능하여 식물인간(植物人間)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남편은 김여사(金女史)의 손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김여사(金女史)는 남편의 식사 시중은 말할 것도 없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옷을 갈아 입히는 등 하나에서 열까지 손발이 되어 모든 수발을 들어야 하고 농사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여사(金女史)는 남자들도 하기 힘드는 농사 일을 하면서 남편의 병간호(病看護)를 5년 동안이나 계속하면서도 한마디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한결같으며 남편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선 가끔 이웃집 사람들을 집으로 초청(招請)해서 음식을 대접(待接)하기도 한다.
김여사(金女史)는 또 친척(親戚)이나 마을 사람들의 길흉사(吉凶事)에는 빠짐없이 적극 참여하여 솔선(率先)해서 일을 하고 이웃에 사는 소년소녀가장과 불우한 노인들을 찾아가서 청소도 해 주고 김치도 담궈주고 음식도 나누어 먹는 등 인정을 베푼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힘들고 귀찮은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 자신의 행복과 이익만을 추구하고 향락(享樂)과 과소비를 일삼고 남편이 건강(健康)해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돌아서 버리는 세상인데 김여사(金女史)는 힘들고 고된 농사일을 혼자서 도맡아 하면서 식물인간이나 다를 바 없는 남편의 병간호(病看護)를 5년 동안이나 계속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극한 정성으로 회복을 기원하고 있으니 열부가 아닌가.
뿐만 아니라 3남 1녀의 뒷바라지를 착실히 해서 훌륭하게 교육시키고 이웃 어른들에게 친절하고 공손(恭遜)하며 불우한 이웃을 도우고 마을의 행사에 참여하여 솔선수범(率先垂範)하고 있으니 윤리도덕(倫理道德)이 날로 쇠퇴(衰退)해 가는 오늘날 진실(眞實)된 현모양처(賢母良妻)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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