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복순(李福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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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1997년 4월 21일)
열행상(烈行賞)
대구광역시 북구 대현동
열부(烈婦) 이복순(李福順) 38세

이복순(李福順) 여인(女人)은 1987년 10월에 주병귀(周秉龜)씨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고 화목(和睦)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이여인(李女人)의 남편은 평소에도 건강(健康)이 좋지 못했는데 개인택시 운전을 하면서 과로(過勞)가 겹쳐 허리디스크로 치료(治療)를 받았으나 계속 앉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별로 효험(效驗)이 없었다.

그래서 홧김에 술을 마시고 과음(過飮)하게 되어 95년 4월에는 심한 디스크와 알콜중독으로 신경정신과(神經精神科)의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여태까지 남편이 벌러 온 돈으로 생활하다가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이여인(李女人)은 남편 병구완을 하면서 아이들과 살아가기 위해서 생활전선(生活戰線)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낮에는 보험회사에 나가서 월 25만원 정도의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維持)해 나가고 저녁에는 인근에 있는 횟집에 나가서 남편의 치료비를 벌어야 하는 등 불철주야(不撤晝夜) 노력하고 있는데 96년 9월에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속립성 결핵 및 장기부전증으로 인한 호흡곤란(呼吸困難) 증세로 사망할 위험(危險)이 높은 지경에 이르러 개인택시를 팔아서 치료비(治療費)에 충당해도 부족한 치료비 마련을 위해서 이여인(李女人)은 동분서주(東奔西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여인(李女人)의 이렇게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하는 것을 보고 감동한 남편도 자포자기(自暴自棄)하던 마음을 고쳐먹고 재활(再活)의 의지(意志)를 보이고 실제로 남편의 병세(病勢)가 차츰 차도가 있어 조금씩 호전(好轉)되어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친척 친지들도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성원(聲援)해 주고 있으니 이여인(李女人)은 더욱 용기(勇氣)가 난다.

이여인(李女人)은 남편 대신에 가족들을 부양(扶養)하고 남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늦게까지 남의 집 일을 해야 하는데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하고 있는 딸이 1학년에 다니는 동생을 돌봐 주고 집안 청소도 해 두는 등 어른스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열부(烈婦) 집에 효녀(孝女) 났다고 칭찬하고 있다.

이렇게 고되고 힘드는 생활을 하면서도 이여인(李女人)은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슬기롭게 역경(逆境)을 헤쳐가고 있으니 요즘 여성(女性)으로서는 보기 드문 열부(烈婦)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