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여복임(呂福任) 여사(女史)는 성산여씨(星山呂氏)의 가문(家門)에서 예절(禮節)과 부도(婦道)를 닦아 17세 때에 교사로 봉직(奉職)하던 진찬유씨와 혼인하여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화목(和睦)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왔다.
그러던 중, 남편이 교직생활(敎職生活)을 그만두고 도의원(道議員)에 출마해서 실패하자 살림살이가 매우 어려워졌으나 역경(逆境)을 슬기롭게 극복(克服)하고 시부모님을 정성껏 모시고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 자녀교육 등 어느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생활해 오던 중 시아버지께서 위장병(胃腸病)으로 10여년 동안 고생하셨는데 여여사(呂女史)는 좋다는 약을 구해 드리고 민간요법(民間療法)으로 온갖 약을 시탕하고 식이요법 등 지극정성으로 간병(看病)했으나 마침내 돌아 가시게 되자 여여사(呂女史)는 자신의 효성(孝誠)이 부족한 탓이라고 자성(自省)하고 조석전곡(朝夕奠哭)하며 3년상(喪)을 극진히 치루었다.
이러한 며느리의 효심(孝心)에 감동한 시어머니가 외롭게 홀로 사시는 여여사(呂女史)의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같이 생활하자고 하시기에 여여사(呂女史)는 고맙게 생각하고 모시고 와서 함께 사는데 두 어른들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효도하고 있다.
그래서 95세의 천수(天壽)를 누리신다고 이웃 주민들은 여여사(呂女史)의 효행(孝行)을 칭송해 마지 않는다.
여여사(呂女史)는 형제간에도 우애(友愛)가 남달라 대소사(大小事)의 화목(和睦)과 단결도 잘 이루어지고 서로 도우면서 우애를 돈독(敦篤)히 하고 있다.
또 2남 3녀의 자녀들에게도 효(孝)를 실천하도록 교육시키고 모두 유능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켰으며 평소에 마을의 젊은 사람들에게도 품위를 지키고 예절(禮節)바른 모범(模範)을 보이고 있으며 젊은 사람들이 인사하면 반갑게 답례하고 환한 얼굴로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며 고운 심성 때문에 이웃에 사는 불우(不遇)한 노인을 찾아가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도와 주기도 한다.
현재 여여사(呂女史)의 부군(夫君) 진찬유씨는 노인복지(老人福祉)사업과 사회봉사(社會奉仕)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여사(呂女史)도 그 뜻을 받들어 내조(內助)하고 있으며, 1995년 4월에 경북도지사(慶北道知事)로부터 표창을 받은 바도 있다.
- 이전글제40회 효행상(孝行賞) 이태암(李泰岩) 25.06.25
- 다음글제40회 효행상(孝行賞) 조순돌(趙順乭) 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