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문옥희(文玉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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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1997년 4월 21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영덕군 달산면
효부(孝婦) 문옥희(文玉姬) 40세

문옥희(文玉姬) 여사(女史)는 시할머니와 시부모님 그리고 시동생, 시누이가 7명이나 되는 층층시하(層層侍下)에서 열 식구가 넘는 대가족(大家族)의 맏며느리로 시집갔다.

문여사(文女史)는 결혼 초부터 대가족의 뒷바라지와 농사일을 거들면서 잠시도 쉴 틈이 없었는데 결혼한지 1년 만에 건강(健康)하시던 시어머니께서 중풍(中風)으로 쓰러졌다.

문여사(文女史)는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거동이 불능(不能)한 시어머니의 식사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더럽혀진 옷을 갈아 입히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방 청소와 빨래를 하는 등 지극한 정성(精誠)으로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를 하였다.

시할머니께서는 시어머니가 병석(病席)에 눕게 되고 난 이듬해에 돌아가셨고 7명의 시동생과 시누이도 모두 성혼(成婚)해서 분가하고 출가하였으며 이제는 시부모님과 슬하에 1남 2녀를 두어 한결 수월해졌지만 농토가 늘어나서 영농하는 데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장병(長病)에 무효자(無孝者)라 하는데 문여사(文女史)는 장장 18년이라는 장구(長久)한 세월 동안 한결같이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간병(看病)하고 있으니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효부(孝婦)라고 칭송해 마지 않는다.

그러나 문여사(文女史)는 맏며느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따름이라면서 겸손(謙遜)해 한다.

문여사(文女史)는 또 시아버지나 시어머니의 생신(生辰) 때에는 말할 것도 없고 평소에도 수시로 동네 노인들을 초청(招請)하여 음식을 대접(待接)하고 시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도록 배려하고 연로하신 시아버지의 건강(健康)을 염려하여 평소에 상비약(常備藥)을 준비해 두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또 문여사(文女史)의 자녀들도 어머니의 효성(孝誠)을 눈으로 보고 자라왔기 때문에 효(孝)가 몸에 배어 휴일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심부름과 잔일을 도와 드리고 있다.

이와 같이 문여사(文女史)는 층층시하(層層侍下)의 대가족이 사는 집에 시집와서 맏며느리로서 할 일을 다하고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었으며 특히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를 18년 동안 이나 지속(持續)하고 있으니 그 애틋한 마음은 진정한 효(孝)의 교본(敎本)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