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홍도화(洪桃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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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1997년 4월 21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영양군 영양읍
효부(孝婦) 홍도화(洪桃花) 47세

홍도화(洪桃花) 여사(女史)는 가난한 농가(農家)의 1남 7녀 중 장녀로 태어나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쌀 세 가마니를 받고 시각장애자(視覺障碍者)인 김병원(金炳元)씨와 결혼하였다.

남편은 시각장애자 1급으로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곁에서 수발을 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홍여사(洪女史)는 혼자서 논 700평의 농사를 지으면서 시부모님을 봉양(奉養)하고 슬하에 2남 2녀를 키우면서 어렵고 힘드는 생활을 해 오고 있었는데 1985년 시아버지가 대장암(大腸癌)에 걸려서 5년 동안 투병생활(鬪病生活)을 하는 동안 지극한 정성(精誠)으로 극진(極盡)히 병간호를 했으나 끝내 돌아 가시고 말았다.

홍여사(洪女史)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시아버지께 못다한 효도(孝道)를 시어머니께 하기 위해서 조석으로 문안 드리고, 집안의 대소사(大小事)를 시어머니께 의논해서 처리하고, 비록 가난하지마는 시어머니의 반찬을 걱정해서 정성껏 장만해 드리는 등 지극한 정성으로 시봉(侍奉)했으나 94년에 중풍으로 쓰러졌다.

홍여사(洪女史)는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거동이 불능한 시어머니의 식사 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沐浴)을 시켜 드리고, 더럽혀진 옷을 갈아 입히고, 방안 청소와 빨래 등 온갖 정성(精誠)과 노력을 다해서 병간호(病看護)를 하고 있다.

홍여사(洪女史)는 실질적인 가장(家長)으로서 남편의 손발 노릇과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 집안의 모든 일을 혼자서 도맡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몸은 지칠대로 지쳐도 한마디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는다.

이러한 홍여사(洪女史)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보기 드문 효부(孝婦)이고 열부(烈婦)라고 칭송이 자자하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마을에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도와주고 경조사(慶弔事)가 있을 때에는 앞장서서 모든 일을 솔선수범(率先垂範)하고 마을의 어른들도 공경(恭敬)한다.

이와 같이 홍여사(洪女史)는 눈이 어두운 남편에게 시집와서 시부모의 병간호를 지극정성으로 하는 한편, 어려운 사람을 꾸려 오면서도 이웃과도 정답게 지내고 있으니 모든 사람의 귀감(龜鑑)이 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