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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외분(趙外粉) 여사(女史)는 김양훈씨와 결혼하여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결혼 당시부터 시어머니께서 몸이 허약해서 잦은 병치레로 인한 치료비(治療費)의 지출이 많아 생활이 어려웠으나 조여사(趙女史)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시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온갖 정성(精誠)과 노력을 다했다.
그러던 중, 1992년부터 시어머니가 중풍(中風)으로 쓰러져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거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조여사(趙女史)는 경제적(經濟的) 여건이 따르지 못해 시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갈 수가 없어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유명한 의원을 찾아가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한편, 민간요법(民間療法)으로 좋다는 약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산과 들을 헤매어 약초를 캐오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하며 식사의 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더럽혀진 옷을 갈아 입히고, 청소와 빨래를 하는 등 모든 정성(精誠)을 다하여 병간호(病看護)를 하고 있다.
조여사(趙女史)는 이렇게 정성과 노력을 다하여 시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날로 어려워진 살림으로 인해 정부에서 선정한 생활보호대상자(生活保護對象者)에게 주는 지원(支援)을 받게 되었지만 보조금에만 의지하지 않고 개와 염소 등의 가축을 기르고 가내수공(家內手工)을 하면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 96년에는 송아지 5마리를 사 들여 부농(富農)의 꿈을 키우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조여사(趙女史)가 이렇게 의욕을 가지고 노력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시어머니의 병구완(病救援)을 하는 것을 하늘도 알았는지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시어머니의 병이 차츰 차도가 있어 지금은 문밖 출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지켜 본 이웃 주민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조여사(趙女史)의 효행(孝行)을 칭송(稱頌)해 마지 않는다.
이와 같이 조여사(趙女史)는 결혼 초부터 가난에 시달리면서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들어왔고 더욱이나 5년 전부터는 중풍으로 와병(臥病) 중인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에 온갖 정성(精誠)을 다해서 병세(病勢)를 많이 회복시켰고 알뜰한 내조(內助)로 가세(家勢)도 향상 시켰으니 한국 여성의 참된 길을 보여주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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