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순재(李順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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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1997년 4월 21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상주시 화북면
효부(孝婦) 이순재(李順載) 66세

이순재(李順載) 여사(女史)는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15세 때에 경북 상주에 사는 이경복씨와 혼인(婚姻)해서 시할머니와 시아버지를 모시고 어린 시동생(5세·2세)을 키우면서 1남 1녀를 낳고 어렵게 살아왔다.

이여사(李女史)의 남편은 화북초등학교 청소부로 일해 오다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勃發)하자 군에 입대해서 52년 1월에 제주도 육군 제 1훈련소에서 전사(戰死)하였다.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여사(李女史)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눈앞이 캄캄했으나 시어른들이 계시고 어린 자식들을 생각해서 마음을 굳게 먹고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손자를 잃어버린 시할머니께서 상심한 끝에 병석(病席)에 눕게 되었다.

이여사(李女史)는 온갖 약을 구해다가 정성껏 간병(看病)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이듬해 (53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이여사(李女史)는 남의 집 날품팔이를 하면서 시아버지를 모시고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하여 시동생을 성혼시키고 분가해 주었는데 시동생이 백혈병(白血病)으로 형수(兄嫂)인 이여사(李女史)집으로 들어와서 투병생활(鬪病生活)을 하게 되었다.

이여사(李女史)는 백방으로 약을 구해다가 병간호(病看護)를 했으나 백약이 무효로 1년 후에 사망하였다.

이여사(李女史)는 시동생의 장례(葬禮)를 치르고 나서 다시 품팔이를 하면서 시아버지를 극진(極盡)히 모시었다.

조석으로 문안 드리고 낮에는 남의 집 일을 하다가도 점심 시간에 얼른 집으로 와서 시아버지의 진지상을 차려 드리고 저녁에는 같이 식사를 하면서 불편한 데가 없는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시아버지의 연세가 많아서 (93세) 몇 해 전부터 노환(老患)으로 거동이 불편해져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일하러 가지 않는 날을 부축해서 걸음걸이를 시켜드리는 등 건강회복(健康回復)을 위해서 온갖 정성(精誠)과 노력을 다하면서 마을의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모든 일을 앞장서서 일한다.

이와 같이 이여사(李女史)는 일찍이 남편을 6.25 전쟁에서 잃어 버리고 시할머니의 병구완(病救援)과 시동생의 병수발을 들었고 품팔이를 하면서 연로하신 시아버지의 병시중을 들고 있으니 요즘 세상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효부(孝婦)라고 지역주민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