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김춘숙(金春淑) 여사(女史)는 21세 때에 시집와서 가난한 농가의 맏며느리로서 시할머니와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누이와 시동생 등 8명이 한 집에서 살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김여사(金女史)는 신혼(新婚)초부터 위암(胃癌)으로 거동을 못하시는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를 해야 했다.
식사의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젊은 새댁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병구완을 정성껏 하고 있는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시할머니께서 노환(老患)으로 수족이 마비(痲痺)되어 거동이 불능하게 되어 병석(病席)에 눕게 되었다.
김여사(金女史)는 시어머니의 병구완만 해도 힘이 드는데 시할머니의 병수발도 들어야 하니 몸이 지칠대로 지쳤지만 한마디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지극한 정성으로 식사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처리하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더럽혀진 옷을 갈아 입히고, 빨래를 하는 등 온갖 정성(精誠)을 다하여 간병(看病)했으나 시집 온지 1년 3개월 만에 시어머니도, 시할머니도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이것을 지켜 본 이웃 주민(住民)들이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효부(孝婦)라고 칭찬이 자자했으나 김여사(金女史)는 자신의 정성(精誠)이 모자라서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하면서 크게 슬퍼하였다.
김여사(金女史)는 남편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근검절약(勤儉節約)해서 시누이와 시동생을 성혼(成婚)시키고 분가해 주었다.
그리고 1남 2녀를 모두 훌륭하게 교육시켜 성취(成就)시켰다.
그러던 중, 1994년에 시아버지가 갑자기 병석(病席)에 눕게 되자 김여사(金女史)는 동분서주(東奔西走)해서 온갖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시탕(侍湯)하였으나 효험(效驗)이 없어 병원에서 수술(手術)을 받았더니 지금은 완쾌(完快)해서 88세(米壽)의 고령(高齡)이신데도 정정하신 것을 보고 또 한번 김여사(金女史)의 효행(孝行)을 이웃 사람들은 칭송(稱頌)해 마지 않는다.
이와 같이 김여사(金女史)는 신혼 초부터 시어머니와 시할머니의 병구완(病救援)을 지극한 정성으로 했으며 시누이와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착실히 해서 출가(出嫁)시키고 분가해 주었으며 자녀들을 훌륭하게 교육시켰고 시아버지의 병간호(病看護)를 지성(至誠)으로 하여 건강을 회복(恢復)하도록 하는 등 어려운 가정을 이끌어 가면서 시부모님에게 극진히 효도(孝道)를 하고 있다 하니 그녀의 앞날에 반드시 행운(幸運)이 있으리.
- 이전글제40회 효행상(孝行賞) 정갑수(鄭甲壽) 25.06.25
- 다음글제40회 효행상(孝行賞) 송혜숙(宋惠淑) 25.06.25